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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1960년 3월 15일의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과 이기붕을 정․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한편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을 정․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그런데 조병옥이 선거가 실시되기 전에 미국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4번째 대통령의 당선을 노리는 이승만의 대통령 경쟁자가 없어졌다. 그러자 자유당 정권은 연로한 이승만이 유고시 대통령을 대행할 부통령을 자유당 인물인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감행하였다. 이에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4월 18일에는 서울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궐기하였다. 4월 19일에는 서울 시내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대규모의 시위를 계속하였고, 지방의 대도시에서도 시위가 잇달아 일어났다. 이승..

시인 이상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그의 글은 때로는 암호처럼 보일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데, 특히 그의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버지 김연창이 이발소를 운영하던 사직동에서 어머니 박세창 사이에서 태어난 이상은 세 살 때인 1912년 몰락한 양반인 큰 아버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갔다. 자식을 낳지 못한 큰어머니의 구박을 받았으며, 아들가지 태어나면서 홀대가 심해졌다. 큰아버지는 이상을 집안을 일으킬 인재로 생각해 엄격하게 양육하였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였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며, '이상'이라는 필명은 총독부 건축 기사로 일하던 당시 한 인부가 김해경을 '긴상(김씨)'라고 부르는 것..

‘화성 제암리 학살 만행의 날’

1919년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에 장날을 맞아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독립 연설회를 한 다음 만세시위를 하였다. 시위대는 일본인 소학교도 불질렀다. 다음 날인 4월 1일 주변 산봉우리 80여 곳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르자 일본인 부녀자와 언론인이 피난할 정도였다. 만세시위가 계속 이어지자 일본군은 검거반을 조직해 탄압에 나섰다.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오늘날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는 만세운동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본군 중위 아리다 도시오가 이끄는 11명의 군인과 2명의 경찰은 4월 15일 오후에 제암리 마을에 들어와 강연을 한다고 속여 기독교와 천도교 신자를 교회에 집합시켰다. 교인 32명이 교회당에 모이자 중위는 군사들에게 예배당을 포위하고 창문과 출입문을 닫고는 일제히..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김동삼 선생은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일제 경찰에 하얼빈에서 피체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받고 평양감옥에서 옥중생활을 하다가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어 1937년 4월 13일 순국하였다. 선생은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일제의 감시에 혹시나 처벌받을까 두려워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김동삼 선생의 시신을 아무도 수습하지 않을 때, 한달음에 달려간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성북동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해 한강에 뿌렸다고 한다. 김동삼 선생은 일생을 분열된 독립운동의 통합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의 이름인 동삼(東三)에는 ..

동의수세보원

130년 전 오늘(1894년 4월 13일)은 사상의학을 완성한 조선 후기의 한의학자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1837~1900)가 총 4권 2책의 저술을 끝마친 날이다. 은 이제마가 1893년 7월 13일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주창한 책이다. 책 이름에서 ‘동의(東醫)’는 중국의 의가(醫家)와 구별하기 위한 조선 고유의 의술을 나타내며, ‘수세(壽世)’는 온 세상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킴을 뜻한다. 이제마는 은 병이 생기고 난 뒤 어떻게 치료하고 약을 쓰면 나을 수 있다는 치료 중심의 의서인데 비하여, 은 애초에 병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찌 하면 되는가 그 방도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하였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사람이 타고난 장부(臟腑)마다 독특한 성리(性理)가 있으며 그 기능이 강..

비틀스

1970년 4월 10일, 비틀스가 해체되었다. 비틀즈의 시초는 1957년 존 레논이 조직한 고등학교 밴드 '쿼리멘'이다. 이후 몇 번의 밴드 멤버를 바꾸다가 폴 매카트니와 그의 친구 조지 해리슨이 비틀스에 가입했다. 1962년 링고 스타가 들어오면서 최종적으로 밴드가 완성됐다. 비틀스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밴드로서 인정받았다. 스키플과 비트, 1950년대 로큰 롤을 뿌리로 두며, 클래시컬한 음악과 전통 팝의 요소들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악에 녹아냈다. 처음 그룹 이름은 비탈스, 실버 비트, 실버 비틀, 실버 비틀스로 했다가 비틀스가 되었다. 비틀스는 1960년대 초반 함부르크의 클럽을 전전하며 실력을 쌓은 이후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면서 'Love Me Do'라는 ..

독립운동가 손병희

오늘은 천도교(동학) 지도자이면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명인 ‘손병희(孫秉熙, 1861년 4월 8일~1922년 5월 19일) 선생’이 출생한 날이다. 천도교 지도자이자 독립 운동가 종교와 교육 사업으로 독립을 위해 힘쓰다가, 다른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최대 규모의 한민족 독립 운동인 삼일 운동을 일으켰다. 일본의 탄압으로 실패하였지만, 민족혼을 일깨워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는 계기를 이루었다. 본명은 응구, 호는 의암이다. 손병희는 어렵게 자라 어려서부터 불쌍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도우려는 마음이 강했다. 그는 1882년에 동학을 알게 되었고 이듬해부터 최시형의 바로 밑에서 고된 수행을 하였다. 손병희는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는 교조 신원 운동을 여러 차례 적극적으로 ..

신문의 날

오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일간지이며, 최초의 민간신문이고, 한글 전용신문인 독립신문이 독립협회를 이끈 서재필과 독립협회에 의해 창간되었다. 1896년 오늘, 한글과 영문으로 발행된 독립신문은 19세기말 조선시대 말기 시대상을 담아 일반 민중들에게 자유와 민권 사상을 고취하는 등 민중계몽에 앞장섰지만 조선말기의 혼란상을 수습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정부가 탄압을 하고, 수구세력의 미움을 받아 발행인이 바뀌는 등 혼란을 겪다가 1899년 12월 4일자로 폐간되었다. 1957년 언론계는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의 창간을 기념하고, 신문의 역할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 있다.

주문진 아들바위

강릉시 북쪽의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언덕 끝자락의 주문진의 하얀 등대 너머 위치한 소돌아들바위공원에서는 바람과 파도에 깎인 절묘하고 기괴한 모습의 기암괴석들을 볼 수 있다. 도로 쪽에서 보면 거무튀튀하고 날카롭게 각진 바위가 마치 힘센 수소를 연상케 하며, 코끼리 바위 등 자연 형성된 신기하고 기괴한 바위들로 가득하다. 소돌아들바위는 일억 오천만년 쥐라기시대에 바닷속에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지상에 솟은 바위로 먼 옛날 노부부가 백일기도 후 아들은 얻은 후로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기도하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전설이 있어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들바위 홈페이지 참고)

간디의 소금행진

영국은 1882년부터 식민지 인도에 불공정하고도 엄격한 과세 정책을 시행하였다. 인도에서 채취한 소금을 영국으로 가져다 가공한 후 다시 인도에 엄청난 세금을 매겨 되팔았다. 소금령으로 인도인은 소금을 직접 만들 수 없었고, 천일염에 손을 대면 체포되었다. 할 수 없이 인도인들은 영국에서 가공한 비싼 소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소금 독점에 반대해 1930년 3월 12일 간디가 소금 행진을 시작했을 때 79명이 뒤따랐지만 387㎞를 걷고 난 4월 30일까지 300만 명이 함께 했다. 소금 행진은 간디의 ‘사트야그라하’ 중 하나였다. 산스크리트어 ‘사트야(진실)’와 ‘아그라하(저항하다)’의 조어인 사트야그라하는 인도 독립과 자치를 주장하던 간디가 1920년부터 불복종 운동 등을 통해 영국에 요구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