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움직이는 역사박물관 33

숭례문

가는 방법 서울역 4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걸어요. 앞으로 계속해서 걷다 보면 숭례문이 보여요. 한양 도성의 정문이자 남쪽에 있는 대문인 숭례문에는 유교의 네 가지 덕목 중 ‘예’ 자를 따와 ‘예를 숭상하자’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숭례문에서는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열렸어요. 문루에 종을 달아 문이 닫히고 열리는 시간을 알려 주기도 했어요. 숭례문은 태조 때 완공되었는데 세종, 성종 때 큰 수리를 했다고 해요. 대한 제국 말에 숭례문 양 끝으로 이어져 있던 성곽들을 허물고 그 옆으로 도로를 냈지요. 그렇게 차들에 둘러싸인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가 2005년에 숭례문 주변을 광장으로 만들면서 국민들이 숭례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

고려거란전쟁의 영웅, 강감찬

요즘 한국방송에서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아마도 주인공은 강감찬 장군이 아닐까 한다.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내려 서울대학교쪽으로 가다보면 고려 시대의 명장(名將)인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인 낙성대가 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오래된 향나무가 있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낙성대로 77(봉천동 228번지)이다. 이곳을 인헌동이라고 하는데, 강감찬 장군이 84세로 세상을 떠나니, 나라에서 ‘인헌(仁憲)’이라는 시호를 내려, 이에 인헌동이라 불리워졌다. 부근에 은천동도 있는데, 이는 장군의 어릴 때 이름(아명)을 딴 동네 이름이다. 이곳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64년부터 보수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1972년에는 서울유형문화재 4호로 지정되었다. 이어서 1973년 6..

돈의문터

가는 방법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5분 정도 직진하면 정동 사거리가 나와요. 이곳이 옛날에 돈의문이 있었을 거라 추정되는 곳이에요. 돈의문은 한양 도성의 서쪽에 있던 대문이에요. 유교의 네 가지 덕목 중 ‘의’ 자를 따와 ‘의로움을 돈독히 하라.’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어요. 다른 사대문과 같은 시기에 세워졌지만 태종 때 폐쇄하고 서전문을 새로 지었어요. 그 후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새롭게 돈의문을 세웠어요. 그러나 1915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도로를 넓히면서 돈의문은 완전히 철거되어 버렸어요. 비록 사대문 중 유일하게 현재 모습이 남아 있지 않고 터만 있지만 돈의문 안쪽 일대 마을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조성하면서 돈의문의 역사를 알리고 있지요.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가..

흥인지문

가는 방법 동대문역 9번 출구로 나와 오른편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요. 보행섬에서 보았을 때 오른편으로 흥인지문이 보일 거예요. 흥인지문 쪽으로 한 번 더 횡단보도를 건너요.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은 한양 도성을 건설하면서 동서남북에 네 개의 대문, 사대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유교의 중심이 되는 네 가지 덕목인 ‘인의예지’에서 한 글자씩 따와 사대문의 이름을 지었지요. 동쪽에 있는 대문은 ‘인’ 자를 넣어 ‘어진 마음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흥인지문이라고 지었어요. 흥인지문은 다른 대문들과 다른 특징이 있어요. 우선 흥인지문만 네 글자로 되어 있어요.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한양의 동쪽 기운이 약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를 보완하고자 ‘갈 지(之)’ 자를 넣어 기운을 강하게 한 거지요. 흥인지문에만 성문을 둘..

운현궁

가는 방법 안국역 4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왼편으로 운현궁 입구가 나와요. 운현궁은 흥선 대원군이 살던 집이에요. 이 집이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고종이 왕이 된 후부터예요. 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았던 집을 본궁이라고 하는데, 본궁 앞의 고개 이름인 ‘운현’을 따 운현궁이라 지었다고 해요. 운현궁은 고종이 즉위하고 한 달쯤 지나 궁중의 최고 어른이었던 신정 왕후의 명을 받아 새로 건물을 지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사랑채로 쓰였던 노안당이 보여요. 유교 경전인 가운데 ‘노인을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노자를 안지하며’라는 구절 에서 따와 이름을 지었지요. 흥선 대원군은 임오군란 때 청나라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와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해요. 노안당의 왼편에 있는 중문으로 ..

경희궁

광화문역 7번 출구로 나와 뒤쪽을 바라본 다음 오른쪽으로 꺾어 큰길을 따라 직진해요. 10분가량 걸으면 오른편으로 경희궁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어요. 경희궁은 경복궁ㆍ창덕궁ㆍ창경궁ㆍ덕수궁과 함께 조선 시대 5대 궁궐로 꼽히지만, 다른 궁궐들에 비해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어요. 다른 궁궐들과 달리 복원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경희궁은 광해군 때의 이궁으로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어요. 임진왜란 때 모든 궁궐이 불타 버렸는데, 광해군은 그중 다시 지어진 창덕궁에는 머물기를 꺼려 했어요. 창덕궁에서 단종이 세조에 의해 폐왕이 되었고, 사화가 일어나 많은 선비들이 죽었어요.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죠. 그래서 광해군은 창덕궁 대신 조선 16대 왕인 인조의..

아름다운 고궁, 창덕궁

가는 방법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요. 그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왼편으로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 나와요. 창덕궁은 태종이 지은 경복궁의 이궁(임금이 나들이할 때에 머물던 별궁)이에요.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불에 타 광해군 때 다시 지었어요. 창덕궁의 정문을 돈화문이라고 불러요. 처음에 돈화문은 2층 구조로 다른 궁궐의 대문보다 높게 만들고 문 앞에 월대를 두어 왕실의 위엄을 나타냈지요. 창덕궁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인정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문을 거쳐야 해요. 먼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금천교라는 짧은 돌다리가 하나 나와요. 우리나라에 있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움직이는 역사 박물관」창덕궁 < 학습 < 기사본문 - 소년한국..

아름다운 고궁, 경복궁

가는 방법 경복궁 역 5번 출구로 나와서 앞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경복궁이 나와요. 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다음 1395년에 세운 정궁이에요.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조선의 개국 공신이자 경복궁을 지을 때 총책임을 맡았던 정도전이 지었어요. ‘큰 복을 누리고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경복궁 외에도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근정전을 비롯하여 사정전, 강녕전 등 경복궁 내 여러 건물의 이름도 정도전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지요.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흥선 대원군의 주도 아래 복원이 되었어요.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또다시 훼손이 되었고, 1990년부터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진리와 삶의 터전 ‘농업 박물관’

가는 방법 : 서대문역 서대문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요. 횡단보도를 건너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오른편으로 농업 박물관이 보여요. 농업 박물관은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를 알려 주는 농업 역사관, 농민들의 생활을 볼 수 있는 농업 생활관, 농업 협동조합의 역사와 우리 농업의 중요성을 알려 주는 농업 홍보관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농업에 관한 역사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어요. 실제처럼 꾸며진 논밭의 사계절과 실제로 쓰이던 농기구를 살펴볼 수 있답니다. 농업 박물관은 농업인들의 기증 유물로 꾸려진 국내 최초의 농업 전문 박물관이에요. 다양한 전시와 교육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답니다. 영상실에는 농업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농산물과 축..

진리와 삶의 터전, 청계천 박물관

가는 방법 : 용두역 용두역 4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연달아 있는 두 개의 횡단보도가 보일 거예요. 이 보도를 모두 건넌 다음, 큰 사거리가 나올 때까지 직진해요. 걸어온 방향을 기준으로 했을 때 대각선 방향에 있는 길로 가기 위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요. 그 다음 오른쪽 방향으로 길을 따라 직진하다 보면 박물관이 보일 거예요. 원래 ‘개천’이라고 불렸던 청계천은 조선 시대에 한양에 살던 백성들의 젖줄이었어요. 처음에는 홍수를 막을 수 있는 시설이 없어서 물이 자주 넘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해요. 그래서 조선 3대 왕인 태종은 청계천을 관리할 목적으로 개거도감이라는 임시 관청을 설치했어요. 그 후 청계천 주변으로 둑을 쌓고 얕은 곳은 흙을 파내어 물길이 원활하게 흐르게 했지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