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경희궁 3

아픈 역사, 경희궁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경희궁, 그중에 황학정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에 있는 황학정은 원래 광무 3년(1899) 고종황제의 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 담장 가까이에 활쏘기를 연습하도록 만든 활터이다. 고종이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단련을 통해 일본에 대항하려는 뜻으로 (하지만 총을 가진 일본에 대항하는 것은 요즈음 흔히 죽창가를 부르짖는 무리와 같다고 할까?) 활쏘기를 장려하기 위해 어명으로 궁궐 안에 만든 것이다. 궁궐 안이지만 백성들에게도 개방하였으며, 고종도 자주 방문한 모양이다. 1922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 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팔릴 때 사직공원 북쪽인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사직동의 등과정 자리는 대한제국..

아픈 역사 경희궁

경희궁의 정전은 숭정전이다. 일제는 경희궁 전체를 완전히 훼손하면서 숭정전의 목재들이 팔려나갔다. 이것을 일본 사찰인 대화정 조계사(大和町 曹溪寺)가 사서 법당으로 사용하였다. (현재의 조계사와는 다른 절이다.) 해방 이후 다른 건물은 없어지고 숭정전만 남았으며, 그 땅에 동국대학교가 들어서서 197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 법당으로 사용되면서 '동국대 정각원'이 되었다. 용의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七爪龍)'의 모습이다. 그런데 황제일 때는 오조룡이며, 제후국이었던 조선은 사조룡이었다. 그런데 광해군이 황제를 상징하는 황룡을 제압할 수 있는 흑룡에다가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을 경희궁 숭정전에 설치한 것은 그의 중립외교를 통한 자주 국가의 신념이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한다. 경희궁의 아픈 역사가 아닐..

아픈 역사, 경희궁

조선시대 5대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있다. 5개의 궁궐 중 경희궁은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곳이다. 다른 궁궐과 달리 경희궁은 입장료를 받지 않음에도 관람객은 방학 과제를 하러 온 몇 명의 학생뿐이었다. 경희궁은 광해군이 만들었다. 경희궁에 살던 사람은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이었다. 그런데 집터에서 왕의 기운이 일어난다고 해서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왕의 기운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인조반정으로 정원군의 아들인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니 풍수도참설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경덕궁으로 불리던 경희궁은 영조 36년(1760),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면서 ‘경덕(敬德)’이란 시호를 받자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