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5대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있다.
5개의 궁궐 중 경희궁은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곳이다.
다른 궁궐과 달리 경희궁은 입장료를 받지 않음에도
관람객은 방학 과제를 하러 온 몇 명의 학생뿐이었다.
경희궁은 광해군이 만들었다.
경희궁에 살던 사람은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이었다.
그런데 집터에서 왕의 기운이 일어난다고 해서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왕의 기운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인조반정으로 정원군의 아들인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니
풍수도참설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경덕궁으로 불리던 경희궁은
영조 36년(1760),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면서
‘경덕(敬德)’이란 시호를 받자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로도 불렸다.
이궁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영조가 가장 오래 머물러
지금도 태녕전에 어진이 모셔져 있다.
일본은 대부분 전각을 헐거나 팔고
그 터에 학교(경성중학교)를 만들어
조선 역사의 뿌리를 없애려고 하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중, 서울고가 있었으나
현대그룹으로부터 서울시가 터를 사들여 복원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른 궁궐과 달리
경희궁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흥화문을 지나면 놓여졌던 금천교로 2001년 복원됨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
영조의 어진이 모셔진 태녕전
임금님의 기운이 서린 바위 서암, 이 바위로 광해군이 이곳에 궁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