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제주도 28

광해군의 유배

광해군은 강화로 유배되었다. 광해군은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유배지가 태안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강화도와 교동도로 이배되었다. 인조는 광해군이 한양도성 가까이 있는 것이 두려웠다. 청나라에서 언제 자신을 임금에서 내릴 수 있다는 의심병으로 불안감이 있었다. 이러한 불안감은 훗날 자신의 장남인 소현세자를 독살(?)하고 심지어 손자까지 사사(賜死)시키는 인륜을 저버린 행위를 한 것에서 증명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병자호란이 끝나고 더욱 불안감이 높아져 1637년 광해군을 제주도로 이배하게 되었다.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면서 쓴 시가 전하고 있다. 제주에서 광해군(光海君) 부는 바람 뿌리는 비 성문 옆 지나는 길 후덥지근 장독 기운 백 척으로 솟은 누각 창해의 파도 속에 날은 이미 어스름 푸른 산의 슬픈 빛은 싸..

제주도 관덕정

제주도에서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관덕정(觀德亭)은 세종 30년(1448) 제주 목사 신숙청이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후 성종 11년(1480)에 제주 목사 양찬이 수리한 고, 여러 차례 중수되었고, 1969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 所以觀盛德也)'에서 따온 말로,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평소 마음가짐과 덕을 쌓으라는 의미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팔작지붕으로 사방이 모두 개방되었다. 2중 기단위에 26개의 기둥을 세웠다. 호남 제일정으로 불릴만큼 규모가 크고, 보물 제 322호로 지정되었다. 비록 제주 관아 밖에 있지만 관아의 일부이며, 일본에 의..

제주도의 하멜표류기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히딩크로 네덜란드에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시킨 사람도 사실 네덜란드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네덜란드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꽤나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제17대 효종 4년(1653) 1월에 네덜란드 배 스페르베르호가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같은 해 6월 바타비아, 7월 타이완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폭풍우에 밀려 8월 15일 제주도 부근에서 난파당했다. 선원 64명 중 28명은 익사하고, 하멜이하 36명이 제주도에 표착하여 관원에게 체포되었는데, 하멜을 제외한 35명은 전혀 배우지 못한 하류층이었다. 이들은 앞서 표류하여 조선에 거주하고 있던 벨테브레(한국명:박연)의 지휘 아래 훈련도감의 포수로 임명..

제주도 삼성혈

제주도 건국신화는 흔히 삼성신화(三姓神話), 즉 제주 고(高)씨와 양(梁)씨, 부(夫)씨의 시조신화가 있다. 삼성혈의 세 구명은 아무리 비가 와도 빗물이 고이지 않고 눈이 와도 금세 녹아버린다고 한다. 실제 그 구멍에서 제주 사람들의 조상이 나왔다며 동굴생활의 흔적을 말하는 학자도 있지만, 신화이지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일 수는 없다. 제주 삼성신화는 조선 문종 원년(1451)에 편찬된 에 나와 있으며, 가장 오래된 기록은 와 이 있다. 이영권님의 에 나온 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탐라현은 전라도 남쪽 바다에 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났다. 한라산의 북녘 기슭에 구멍이 있어 모흥혈(毛興穴)이라 하니, 이곳이 그것이다. 맏이를 양을나라 하고, 다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