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제주도

삼별초의 혼

윤의사 2017. 11. 28. 19:19

진도에서 쫓겨난 삼별초는 제주도의 항파두리토성으로 갔다.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에 있는 토성은 6KM의 거대한 토성으로 철옹성이라는 뜻의 제주도 말이다.

원종 12(1271) 5월에 항파두리성에 도착한 김통정은 여몽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외성과 내성을 쌓아 방비를 철저히 하였다.

김통정이 항파두리성을 본거지로 삼은 이유는 삼면이 하천으로 둘러 쌓여있으며, 바다가 한 눈에 내려보여 감시가 쉬웠기 때문이다.

삼별초는 이곳에서 2년 동안 남해안의 여몽연합군을 기습 공격하여 골탕을 먹였다. 더구나 일본을 정복하려는 여몽 연합군에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용감한 삼별초가 천혜의 요새인 철옹성 항파두리성에 진을 쳤다고 하더라도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오는 여몽 연합군을 막기에는 힘이 부족하였다. 제주도로 들어온지 2년만인 원종 13(1273)에 삼별초는 여몽 연합군에 의해 패배하게 되었다. 김통정은 70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한라산 중턱으로 피했다가 결국 자살을 하여 한많은 생을 마치게 되었다.

이곳에는 6KM의 항파두리성 중에서 922M를 다시 세웠으며, 항몽 순의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삼별초군이 화살을 쏘는 연습을 할 때 목표물로 사용하던 살맞은 돌’, 김통정장군이 성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패여서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샘이 솟는다는 장수물등이 있다.

삼별초의 패배로 고려는 완전히 몽고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폐하전하, ‘태자세자, ‘로 바뀌는 등 왕실에서 사용하는 말이 격하되었다. 그리고 몽고가 어린 여자를 요구한다든지, 금은 보물을 요구하여 백성들은 더욱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국력을 키워야 한다. 고려 정부가 삼별초와 더불어 끝까지 싸웠다면 백성들도, 나라도 몽고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힘을 키우자! 그리하여 2000년대에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삼별초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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