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이야기/성남의 인물 2

둔촌 이집

성남시 중원청소년수련관으로 가다보면 묘역 입구에 둔촌 이집의 신도비가 있다. 둔촌 이집 신도비 둔촌 이집은 성남 출신 인물로 정몽주와 함께 고려를 지키려고 애쓴 관리 중 한 명이다.그는 공민왕 때 정치를 좌지우지 한 신돈을 비판했다가 화가 미칠 것을 걱정하여경북 영천으로 피했다.공민왕 20년(1371)에 신돈이 역모죄로 처형되자 개경으로 올라와 판전교시사(고려시대 유교 경전 및 여러 도서의 인쇄 및 보관을 하던 관청)직을 하사받았으나, 사양하고 오늘날 성남으로 내려와 여주를 오가며 지냈다.집과 호마저 둔촌으로 바꾸고 시와 학문에 힘썼다.유교집으로 이 있다.그의 후손들은 조선시대에 크게 활약하고 있다.광주 이씨로 대표적인 후손은 한음 이덕형이다.이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이집이"금을 광주리로 주는 것보다 경서..

분당구 백현동 출신 매국노 이완용

매국노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현재의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서 태어났다. 역사학자 이병도는 그의 묘가 전라북도 익산에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익산이라고도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묘는 파묘가 계속되자 후손들에 의해 화장이 되었다.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의 정치가이다. 한때 조선의 개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지만 을사조약 때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 이완용은 고종 때 벼슬길에 나서, 왕세자의 교육을 맡은 데 이어 서른여덟 살에 학부대신이 되었다. 그는 학부대신을 지내며, 최초로 근대적인 초등 교육을 의무화하고, 근대적인 교사 양성 사업을 펼쳐 우리 교육사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동양 여러 나라가 단결하여 서양의 침략에 맞서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동양 평화론’에 현혹되어 일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