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박물관 31

매헌윤봉길의사 탄신 117주년 기념 음악회

어제(6월8일) 양재동 매헌시민의 숲에 위치한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광장에서 윤 의사 탄신 117주년 기념 음악회겸 보훈페스티벌를 서초구와 함께 개최했다.우리나라의 독립에 결정적 기여를 하시고 유명무실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의 중심으로 만드시고 순국하신윤 의사님은 1908년 6월 21일에 태어나셨다.효녀가수 김소유와 박군이 출연해 열창을 하여 분위기를 한층 높였다.일본보다 앞선 1인당 국민소득(GNI)를 보시며 더욱 흐뭇해하실 윤 의사님을 생각하며 극락왕생을 발원해본다.

광복80주년 특별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선포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선포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가 제정한 여러 국가 상징물인 국기(國旗)와 국가(國歌) 등을 계승하였다그리고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당한 날인 11월 17일을 기억하기 위해 순국선열의 날 등 임시정부의 여러 기념일도 이어받았다.또한 1948년 초대 내긱에서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들이 주요 역할을 담당하며 임시정부가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지게 하였다. 예컨대 임시정부..

광복 80주년 특별전

광복 80주년을 맞아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매헌윤봉길의사 뜻을 이어나가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의 지도체제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임시정부는 처음 국무총리제를 실시했다.1919년(대한민국 원년) 4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임시의정원은 행정부(국무원)의 수반을 국무총리로 정하고, 각부 총장을 선출했다. 1919년(대한민국 원년) 9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의 한성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가 통합하면서 지도체제를 바꾸어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 이를 통해 국무총리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25년 대통령 탄핵 이후 취임한 2대 대통령 박은식은 국무령, 국무회의, ..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중앙홀에서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매헌윤봉길의사 뜻을 이어나가다' 의 특별전이 윤봉길의사 상하이 의거 93주년을 기념해 어제(4월29일) 개막했다.특별전은 판넬과 미디어를 통해 임시정부와 1930년대 초반 유명무실해진 임시정부를 다시 일으킨 계기가 된 매헌윤봉길의사를 비롯한 의열투쟁을 보여주고 있다.특별전은 윤 의사의 탄신일인 6월21일 다음 날 끝을 맺는다.

매헌윤봉길의사 순국 92주기

매헌윤봉길의사 순국92주기내일(12월19일)은 매헌윤봉길의사 순국 92주기입니다. 한국교육신문에 순국92주기를 맞아 기고한 글입니다.한국교육신문 [라이프&역사] 윤봉길이라는 길을 걷다12월 19일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지 92주기가 된다. 지난해 12월 8일,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9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일본 가나자와로 향했다. 이국땅의 차디찬 감방에서 구금돼 있다가 형www.hangyo.com

원주 뮤지엄 산의 착호갑사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대한민국이 골치가 아프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를 멧돼지가 한다고 하여 멧돼지를 전문으로 잡는 포수가 나타났고, 멧돼지를 잡는 데 군인까지 동원되고 있다. 옛날에는 호랑이 때문에 골치아팠다. 조선은 호랑이의 나라였다. 고려시대에 원나라에서는 한반도의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1237년 9명, 1277년 18명의 원나라 착호인을 파견했다고 『고려사』에 나와 있다. 조선시대에도 호랑이는 여전하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호랑이 관련 기록은 937회이며, 피해자는 3,989명이었다. ​태조 때는 왕의 집무실(근정전) 뜰 안에 호랑이가 들어왔고, 선조 때는 창덕궁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낳기도 했다. ​최남선은 우리나라가 호랑이 관련 이야기가 많다고 하여 ‘호담국(虎談國)’이라 하였다. 호랑..

(윤봉길의사기념관)윤봉길기념관

윤봉길기념관에는 이봉창의사와 관계된 자료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봉창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교외 요요기 연병장에서 육군 관병식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본국왕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 10일 이치가와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윤봉길의사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의지를 더욱 굳혔다고 한다. 상하이 의거 이틀 전, 윤봉길 의사가 쓰신 유서와 이력서,(보물 제 568호, 국립중앙박물관) 자신의 사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유서이며, 마지막 장에 자신의 유족을 적었다. 유서를 쓰실 때 윤봉길의사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윤봉길의사는 의거 전에 훙커우공원을 답사하며 시를 남기셨다. 김구선생의 시계는 2원이고, 윤봉길의사의 시계는 6..

왕가의 병풍

일월오봉도는 국왕의 권위와 존재를 나타내는 그림으로오로지 국왕만이 사용하는 병풍이다.그래서 국왕이 있는 곳이면 실내외를 막론하고 일월오봉도가 있었다.일월오봉도에는 해, 달, 별과 다섯 봉우리(오악)을 포함한 십이장과임금의 덕을 상징하고 보호하는 각종 자연물관 관련이 있다. 헌종가례진하도 8폭병풍으로 1844년 10월 18일 남양홍씨 재룡의 딸을 계빙로 책봉하고 4일 후 경희궁 숭정전에서 있었던 진하례를 그린 계병이다.1폭에는 하례교문이, 8폭에는 선전관 25명의 좌목이 기록되어 있다. 2-7폭까지는 창덕궁 인정전에서의 진하례를 묘사하였다. 숭정전이 아닌 인정전을 배경으로 진하례를 그리는 것이 19세기의 특징이다.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는 고종 16년(1879) 12월 왕세자였던 순종이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

소설을 병풍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인 을 그림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였다.구전 소설을 8폭에 그리다보니 간략하게 나타냈다.하지만 그림을 보면 당시 글을 모르던 사람들도 이야기의 전개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병풍이 아닐까 한다. 의 주요 장면을 4폭 한쌍으로 이루어진 병풍이다.조선시대 임금들도 자주 어람하였다니,궁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소설이 아니었을까 한다.궁중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김만중이 쓴 을 송암이 그린 병풍이다.유복자였던 김만중이 인현왕후를 옹호하다가남해로 유배를 떠나,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 쓴 이다.그림만 보아도 이야기의 전개를 알 수 있다.그런데 순서가 뒤바뀌었다.8,2,3,4,1,6,7,5의 순서이다. 전생에 성진과 8선녀가 만나는 장..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를 특별전으로 전시하고 있다.정선에 의해 '진경산수화'가 그려진 이래19세기에 이 눈에 띤다.그림 설명을 참고로 그대로 옮겨 적는다. 현존하는 민화 금강산도와 비교하여 압도적으로 큰 화면과 상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일반적인 민화와 다르게 그리고 주요 지명을 붉은색으로 표기했는데, 이는 금강산의 전경과 해설에 집중한 것이다. 마면봉, 우두봉을 말과 소의 형상으로 그린 것이나 봉우리를 사람처럼 표현한 것은 민화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일반 회화에서 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의 금강산도이다. 말처럼 그린 마두봉과 소처럼 그린 우두봉 사람 모양으로 그려진 봉우리 명경대와 황류담 장안사표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