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잘난 척하기 딱좋은 우리불교사전 6

해우소(解憂所)가 화장실이 된 까닭

경봉(鏡峰)스님(1892-1982)이 양산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 조실로 머물 때 해우소(解憂所)라고 써서 화장실에 건데서 유래되었다. 당시 소변을 보는 곳은 휴급소(休急所)라고 써서 달았는데, 이 말은 널리 쓰이지 않는다. 경봉스님은 1953년에 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되었는데, 아마 이 무렵에 해우소란 명칭을 지으셨다. 경봉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문(法門)을 통해 해우소라고 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이야!그런데 중생들은 급한 일은 잊어버리고 바쁘지 않은 것은 바쁘다고 해!휴급소라고 이름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쉬어 가라'는 뜻이야!그리고 해우소라고 한 것은 '쓸데없는 것이 뱃 속에 있으면 ​답답하고 근심 걱정이 생기는데, 그것을 다 버리..

‘행주치마’가 ‘행자스님’이 두르던 치마였다.

오늘날 주부들이 ‘앞치마’라고 부르는 것으로, 부엌일을 할 대 구정물이 튀지 않도록 옷 위에 덧입는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한다. 그런데 이 행주치마가 권율 장군이 임진왜란 때 고양시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맞아 싸울 때 아녀자들이 함께 전쟁에 나서면서 생긴 치마라고 전한다. 즉 왜군에 비하여 군사의 숫자나 무기에서 뒤떨어지자, 권율 장군이 아녀자들에게 앞치마를 두르게 하고, 앞치마에 돌과 같은 왜군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무기를 담아 군사들에게 전한 뒤에 생겼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주치마는 행주대첩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중종 12년(1517)에 발간된 『사성통해(四聲通解)』에 ‘행ㅈ쵸마’라는 표기가 나오며, 1527년에 나온 『훈몽자회(訓蒙字會)』 등 여러 문헌에도 ‘행ㅈ쵸마’라는 기록이 보인다. ..

보리숭어

숭어의 산란기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10월에서 2월까지다. 이 시기 숭어는 산란을 위해 먼바다로 나갔다가 산란을 끝내고 다시 바다의 얕은 곳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4월 경이다. 이때 잡히는 숭어를 ‘보리숭어’라 부른다. 4월은 보리싹이 나고 자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잡히는 숭어는 대개 달다. 보통 숭어의 맛은 계절별로 다른데, 겨울과 보리 숭어는 달고, 여름은 싱거우면서 제맛이 나지 않으며 가을에는 고소하다. 눈 주위에 노란색이 많고 뭉뚝한 꼬리를 가진 가숭어(참숭어)와 달리 보리숭어는 검정색 눈과 뾰족한 꼬리가 특징이다. 정약전이 쓴 에서는 숭어를 “맛이 좋고 깊어 생선 중 첫째로 꼽는다”라고 평가했을 정도이고, 우리 선조들은 숭어를 일컬어 수어(秀漁)라고도 불렀다. 또한 부산지..

완주 화암사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가면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오래된 절이자 안도현 시인의 말을 빌리면 잘 늙은 절인 화암사(花巖寺)가 있다. 가천은 아름다울 ‘가(佳)’와 내 ‘천(川)’으로 맑고 아름다운 시냇물이 흐르는 실개천 옆에 자리잡은 절이다. 절이 산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15세기에 만들어진 『화암사중창기(華巖寺重創記)』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절은 고산현(高山顯) 북쪽 불명산(佛明山) 속에 있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닿아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나 말의 발길도 끊어진지 오래다. 비록 나무하는 아이, 사냥하는 사나이라고 할지라도 도달하기 어렵다. 골짜기 어구에 바위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에 이른다. 골골의 계곡물이 흘러 내려 ..

횡설수설(橫說竪說)

횡설수설(橫說竪說)은 불가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리킨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가리침을 펴실 때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비유와 관련 이야기를 끌어들여 조리있게 잘 설명한 것을 ‘횡설수설(橫說竪說)’이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였으며, ‘횡설수설(橫說竪說)’이 아닌 ‘횡설종설(橫說從說 )’이었다. 『장자 』 ‘서무귀’」 편을 보면 서무귀가 나오자, 여상이 그에게 물었다.(徐无鬼出 女商曰)/ “선생께서는 대체 무슨 말로 우리 임금을 설득하셨습니까?(先生獨何以說吾君乎)”/ 제가 임금님을 설득시키는 방법은 횡적으로는,(吾所以說吾君者)/ 시, 서, 예, 악을 사용하였고,(橫說之則以詩書禮樂)/ 종적으로는 주서의 금판편육도편을 사용하였을 뿐입니다.(從說之..

사자후가 아내의 잔소리?

'사자후(獅子吼)는 5세기 구마라집이 번역한 『유마경』에 나오는 불교용어이다. 『유마경』 ‘불국품’에는 “법을 연설하여 두려움이 없기가 마치 사자가 울부짖듯 하여(猶獅子吼) 보살이 강설함이 우레가 떨치듯 하며……” 부처님의 한 번 설법에 뭇 악마가 굴복하고 귀의한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의 포효에 비유한 말이다. 부처님의 두려움이 없는 위대한 모습들을 백수의 왕인 사자에 비유하는 것을 자주 본다. 부처님이 앉은 존귀한 자리를 ‘사자좌(獅子座)’라 하고, 부처님의 걸음을 ‘사자보(獅子步)’라 한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크게 외치면서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그런데 사자후(獅子吼)가 ‘아내의 잔소리’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가 친구인 오덕인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