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 28

왜 국군과 미군에 의한 희생만 들추는 진실화해위일까?

[단독] 北 6·25때 서울대병원 1000명 총살… 진실화해위 이제야 ‘학살’ 인정 (chosun.com) [단독] 국군·경찰 잘못만 들춘 진실화해위, ‘北 학살’ 20년 만에 첫 규명단독 국군·경찰 잘못만 들춘 진실화해위, 北 학살 20년 만에 첫 규명 6·25 때 서울대병원 1000명 총살 이제서야 집단 학살로 첫 인정www.chosun.com지금까지 북한 김일성과 소련, 중공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희생을 다룬 진실화해위를 보지못했다.왜?라는 의문을 달 수밖에 없다.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국군이나 미군은 가해자라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 것은 아닌지...좀더 공정한 입장에서 진실화해위가 운영되길 바랄 뿐이다.

3월 30일 오늘의 역사, 의주학살사건

3.1운동은 3월 1일에 시작되었으며, 의주에서는 민족 대표 33인 중 한분인 유여대 선생이 자신이 설립한 양실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의주서교회 공터에서 8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이때부터 시작된 의주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30일까지 27회의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1919년 3월 29일 정오 12시경, 의주 고령삭면 구창동에 위치한 영산시장에서 장날을 맞아 약 3,000~4,000명이 참여한 의주지역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최초 운동은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의 연대 속에서 시작되었는데, 일제는 운동을 조기에 종식하고자 재빨리 탄압에 나섰다. 3·1운동이 시작된 지  한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확산되는 터에 일제는 만세운동의 확산을 막이위해 영산시장 내 헌병주재소 헌병 2..

3월27일 오늘의 역사, 김 27만 속을 일본에 수출

대한민국은 2024년 현재 세계 6위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이다.1인당 GDP도 35,000달러로 인구 5,000만 이상, 1인당 GDP 3만 달러 이상의 국가가 되었다.그런데 1947년 오늘 뉴스 제목은'김 27만 속을 일본에 수출'이다.1953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약 67달러(현재 가치로 약 800달러 수준)  , 북한의 80달러보다 오히려 적었다.이 시절에 김 25만속을 수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으니 신문에 대서특필된 것이다.당시에 우리나라의 수출품은 농, 수산품 위주였으니...국가 경제의 기반이 쌀과 보리 중심의 주요 곡물 생산이다.농업중심의 경제 구조였으니, 25만속의 김을 수출한 것은 신문에 나올만 한 것이다.지금의 성과를 이룬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하겠다.오늘날의 영화는 정부와 ..

3월26일 오늘의 역사, 천안함 피격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2.5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 PCC-772 '천안함' 이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물기둥과 함께 물위로 솟아오르며 두 동강이 났다.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46명이 전사하고, 이후 수색작업에 참여한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으며, 수색을 돕던 민간 어선의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었다. 먼저, 나라를 위해 애써주신 우리 국군장병과 민간인 여러분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빕니다.천안함은 대한조선공사에서 1989년 진수한 초계함으로 길이 88m, 폭 10m, 속력 57km를 달리며 100명 내외의 해군이 해상에서 적의 침입을 경게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이 참여한 4개국 73명의 조사단이 합동 조사를 하여 북한의 '연..

3월24일 오늘의 역사, 맥아더의 38선 이북 진격 명령

1951년 3월 24일은, UN 군 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이, '38선 이북에 대한 UN 군의 진격', 곧 북진 명령을 내린 날이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완전히 뒤집은 UN 군은, 인민군을 몰아붙여 압록강에 이르렀지만 은밀하게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11월에는 장진호 전투에서 후퇴한 후, 1월 4일에는 후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수원 남부와 삼척을 연결하는 37도선까지 밀렸다.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파악한 맥아더는 "중국의 해안 봉쇄, 만주의 산업시설 폭격, 장개석 군대의 투입 등 '제한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만주로 전쟁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맥아더의 주장은 전쟁을 그만두..

3월23일 오늘의 역사, 임시정부 2대 대통령으로 박은식 선생 선출

조선 말기,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다. 많은 역사책과 위인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황해도 황주군 남면에서 1859년 9월 30일에 태어난 박은식은 열 살 무렵부터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특히 주자학을 연구하는 데 힘써 일찍부터 학자로서 이름을 날렸다.그는 일본의 침략이 날로 강화되자,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다가독립협회가 해산되자 장지연, 남궁 억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만들어 일제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백성들을 깨우쳤다.의 주필로서 많은 논설을 써서 국권회복과 애국계몽운동을 벌여나갔다. 한편 유교 개혁을 주장하고, 유교계를 친일파의 소굴로 만들려는 일제의 공작을 막기 위해 나섰다.결국 나라를 빼앗기자, 박은식은 1911년 중국 만주로 건너가 국사 연구를 통해 구국 독립..

기회를 놓치면 다시 잡기 어려운 법....

[선데이 칼럼] 쑨원 총통의 걱정, 윤석열 대통령의 실수 | 중앙일보 (joongang.co.kr) [선데이 칼럼] 쑨원 총통의 걱정, 윤석열 대통령의 실수 | 중앙일보중국의 국부 쑨원이 공화국을 창설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부패였다. 그러고 보니 고시원을 세워도, 그 고시원은 또 누가 감시할 것인가? 로마법 이래 통치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누가 감시자를www.joongang.co.kr기회는 한번뿐인데...

3월 22일 오늘의 역사, 윤보선 4대 대통령 하야

1897년에 태어난 윤보선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연소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다 영국으로 에든버러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서 조선총독부의 중요감시대상이기에 친일을,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일제에서 독립하자 한국국민당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하고, 한국민주당으로 흡수되며 계속 활동하였다. 집안의 명성에 능숙한 영어, 그리고 일제 식민지 말기 실시된 창씨개명에 참여하지 않은 윤보선에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려고 했다. 함께 활동한 송진우와 장덕수가 암살당하자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지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서울시장으로 문맹퇴치를 위해 초등학교를 증설하고 허례허식 등의 개선을 위한 신생활운동 등을 실시하였다.이어서 상공부 장관 등을 역임하다가 이승만과의 의견 차이로 갈라섰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