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3월24일 오늘의 역사, 맥아더의 38선 이북 진격 명령

윤의사 2025. 3. 24. 19:38

1951년 3월 24일은, UN 군 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이, '38선 이북에 대한 UN 군의 진격', 곧 북진 명령을 내린 날이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완전히 뒤집은 UN 군은, 인민군을 몰아붙여 압록강에 이르렀지만 은밀하게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11월에는 장진호 전투에서 후퇴한 후, 1월 4일에는 후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수원 남부와 삼척을 연결하는 37도선까지 밀렸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파악한 맥아더는 "중국의 해안 봉쇄, 만주의 산업시설 폭격, 장개석 군대의 투입 등 '제한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만주로 전쟁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맥아더의 주장은 전쟁을 그만두려는 트루먼의 정책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트루먼의 정책을 반대한 맥아더는 1951년 3월 24일, '38선 이북으로의 UN 군 진격'을 명령했다.

전쟁 확대 이유로 중국의 생산기반과 자원으로는 오랜 기간 전쟁을 지속하기가 어려워 스스로 한반도에서 후퇴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든 맥아더를 '국가 원수에 대한 불복종'으로 간주해  1951년 4월 11일 해임하였다. 

4월 19일 맥아더는 퇴임하면서 의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트루먼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1년 7월 10일부터 한국을 제외한 전쟁 당사국의 휴전회담을 추진하였다.

1936년 필리핀의 군사고문으로 좌천되어 아시아와 인연을 맺었던 맥아더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으로 재기해 일본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외국인 지도자가 되었으며, 한국의 독립 후 3년간 한국의 정치를 좌우한 지도자이다. 또한 북한의 남침에 풍전등화의 한반도에서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전술로 북한의 침략을 막는데 공헌하였다.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사진:인천중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