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3월16일 오늘의 역사, 주문진 간첩 침투사건

윤의사 2025. 3. 16. 12:23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현 강릉시 주문진읍)에 1969년 3월 16일 0시 50분경 무장간첩 6명이 칼빈총과 M1총으로 무장한 간첩들이 방첩대원이라고 하면서 강남여인숙에 침입해 주인을 앞세우고 투숙자 9명에게 "우리는 방첩대원이며 조사할 것이 있으니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며 협박해 주민등록증 4매, 승선증 1매, 공무원 신분증 1매, 숙박부 1권을 가지고 도망쳤다.

그 후 1시 20분경 무장간첩 중 4명이 육군대위, 중사, 병장복장과 사복차림을 하고 강남여인숙으로부터 800m 정도 떨어진 선창가 부근에 자리한 주문진 수상경비소(오늘날 해양경찰파출소)에 침입하여 당시 근무 교대 중이던 206전투경찰대 소속 순경 2명과 사환 1명에게 "우리는 방첩대원이다. 근무태도가 부실하다"며 포박하려고 하였다. 이에 염관수 순경 등이 반발하자 간첩들은 칼을 꺼내 등과 옆구리 등 8곳을 잔인하게 찔러 살해했다.

간첩들은 사환은 경비소에 묶어두고 이웅재 순경만을 붕대로 눈을 가린 채 부두로 끌고 갔다. 50미터 쯤 끌려갔을 때 순경이 "앞을 볼 수 없으니 붕대를 풀어주시오." 라는 말에 붕대를 풀어주었다.

붕대가 풀린 틈에 태권도 유단자인 순경이 호송간첩을 공격하자 간첩이 개머리판으로 반격했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쳐 부근에 있던 우체국으로 가 주문진지서에 1시 45분 간첩 신고를 했다.

사환도 결박을 풀고 예비군 소대장집으로 가서 간첩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예비군 소대장은 지서로 가서 순경 두명과 예비군 부소대장과 함께 무장을 하고 축항으로 갔다. 어두운 바다에 간첩들이 탄 검은보트가 보였다. 

4명은 방파제에 엎드려 사격을 5분 정도 사격하니 검은보트가 사라졌다. 

경비소로 돌아와 염 순경의 시신을 수습하고 경찰서에 간첩출현보고를 하였다. 날이 밝아 수색대가 바다를 수색하니 대위 복장 1명, 중사 복장 1명 등 9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때 침투한 간첩의 주목적은 변경된 주민등록증을 얻으려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신속한 경찰과 예비군의 활약으로 주문진무장간첩 침투사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우리 측의 피해는 염관수 순경이 순직하였고, 민간이 1명이 피살되었으며, 이웅재 순경과 민간이 2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짓도 행하는 북한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우리의 전과로는 무장간첩 9명 사살, 시한폭탄·카빈·기관단총·수류탄 등을 노획하였다.

북한의 적화야욕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기에 잠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사진:강릉시청)

현재의 주문진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