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7

장진홍 의사

장진홍 의사는 1895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재 구미시 인동동) 옥계동 문림마을에서 태어나, 1907년 인명학교(현 구미 인동초등) 학생 때 장지필 선생을 만나 항일의식을 키웠다. 1916년 12월 고향 출신 이내성의 권유로 비밀 독립운동단체 광복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민종식과 이강년 휘하의 의병 출신, 영남 유림 등으로 조직된 광복단은 무기 구입, 군자금 모집, 단원 보강의 임무를 하면서 일본에 무력항쟁을 한 조직이었다.일제의 감시가 심하자 장진홍의사는 1918년 만주로 간 연해주 하바롭스크로 건너가 한인 청장년 80여 명을 모집해 군사훈련으로 독립군을 양성해 항일운동을 펼치려 했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 내전과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으로 귀국하였다.귀국해서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학살, 방화,..

진주의 하공진 장군

연초에 고려-거란전쟁이 방영되었다.거란의 2차 침입 때 크게 활약했던 사람이 하공진, 양규, 강감찬 장군이다.하공진(河拱辰)은 진주 출생으로, 성종 때에 압록강 구당사가 되었다. 목종 때에는 중랑장으로 임명되어 왕을 가까이서 모시었다.  강조는 목종 12년(1009)에 김치양이 천추태후와 정을 통하여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즉위시켰다. 하공진은 이에 반대하여 원도에 귀양을 갔다가 풀려 아왔다. 강조와 현종이 거란을 배척하며 친송정책을 이어 나가자, 거란은 성종(아율문수노)이 현종 1년(1010)에 2차로 침입해 의주가도(義州街道)의 흥화진에서 양규 등의 완강히 저항하자 진로를 바꾸어 통주 부근으로 우회해강조와 맞붙어 강조를 죽였다. 이어서 거란군은 곽산, 안주, 숙주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