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용인 채제공

윤의사 2014. 10. 27. 16:15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산 5번지, 청광아파트를 끼고 돌아가면 정조 대의 명재상인 채제공의 묘소가 나온다. 경기도 기념물 제 17호로 지정된 채제공의 묘는 높이 2m, 지름 5m좌우로 망주석과 석양이 한 쌍, 중앙에 향로석과 상석이 있다.

채제공의 묘소가 용인에 있다는 것은 다른 위인과 견준다고 하면 모순이 있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참으로 자랑스럽다 하겠다.

채제공은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태종과 하륜, 세조와 한명회에 견줄만큼 정조에게는 땔 수 없는 인물이다.

요즈음 방영되는 사극 중에 비밀의 문이 있다. 바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때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폐위시키면서 뒤주에 가두려고 할 때 목숨을 걸고 끝까지 반대했던 인물이 채제공이다. 영조는 당파를 떠나 원칙에 충실하면서 강직했던 채제공을 높이 평가하여 정조가 되는 세손 이산이 왕세손 시절 세손빈객으로 임명하였다. 이 인연으로 정조의 즉위 후에는 수궁대장(守宮大將)을 맡아 정조를 최측근으로 정조가 추진하던 탕평정국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으며, 정조가 개혁정책을 추진할 때 선봉에 서서 활동하였다. 마침내 남인으로서는 숙종대 이후 100여년만인 1788년에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이때 채제공은 육조진언(六條眞言)’을 올렸다. 육조진언은

‘1.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도리를 바로 세울 것

2. 탐관오리를 징벌할 것

3. 당론을 없앨 것

4. 의리를 밝힐 것

5. 백성의 어려움을 돌볼 것

6. 권력 기강을 바로 잡을 것의 여섯 가지이다.

오늘날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정조는 채제공의 육조진언을 받아들여 실시하고 난 2년 후, 채제공을 좌의정에 임명하였다. 이때 영의정과 우의정이 없는 삼정승 중 혼자 국정을 총괄하니 독상(獨相)’이라고 하였다. 채제공은 정계에서 소외된 남인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하면서 시회(詩會)를 통해 남인과 서얼들을 등용하여 그들의 실력을 맘껏 뽐내게 하였으니, 정약용·이가환·박제가·유득공·이덕무가 이때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정치 통합의 논리인 탕평을 추구했고 수취제도를 개선해 나갔으며 서얼허통과 신해통공 등의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으며, 특히 신해통공으로 금난전권(禁難廛權)을 폐지하여 시전상인들의 독점판매권을 없애 상공업의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석양상

채제공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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