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봉천동 낙성대

윤의사 2014. 6. 5. 20:26

길을 가던 두 명의 관리는 깜짝 놀랐다. 별이 갑자기 어느 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별이 떨어진 집으로 관리들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문을 두드렸다.

“방금 이곳으로 별이 떨어졌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주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방금 아들을 낳았소이다.”

“그 아이는 분명 나라에 중요한 일을 할 인물이니 잘 키워 주십시오.”

관리들은 말을 마치고 주인에게 큰 절을 하였다. 바로 이 아이가 강감찬이며,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그 곳을 ‘낙성대’라고 불렀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이다.

 

강감찬의 어릴 때 이름은 은천이다. 강감찬은 키가 아주 작고, 마마(천연두)라는 병을 앓아 살짝 곰보였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무예가 뛰어나 언제나 동네 아이들을 이끌며 놀았다.

강감찬은 임금 앞에서 시험을 보아 장원급제하였고, 오늘날의 외무부와 교육과학기술부의 일을 맡아보는 예부에서 차관급에 해당하는 시랑이 되었다. 강감찬이 시랑으로 일하던 시기에 고려는 영토 문제로 북쪽 지방의 거란족과 충돌이 잦았다.

993년 거란족이 고려가 자신들을 무시한다며 대군을 이끌고 침략을 해 왔다. 이때 서희가 거란총사령관인 소손녕을 만나 설득해 물러가게 만들고, 강동 6주까지 획득하였다. 하지만 현종 때 거란족은 다시 침입해왔고, 강감찬은 양규, 하공진과 함께 적을 물리쳤다.

 

강감찬의 나이 일흔 살 때, 거란족이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며 3번째로 침입하였다. 강감찬은 총사령관이 되어 부사령관 강민첨과 함께 거란군을 막기 위해 나섰다. 강감찬은 지금의 의주에 있는 산기슭에 1만 2천 명의 군사를 숨겨 놓은 뒤에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아 놓았다. 그리고 적들이 냇물을 건널 즈음에 막아 놓았던 물길을 열었다.

거센 물길에 거란군은 우왕좌왕하였고, 이 틈에 고려군은 공격을 퍼부어 살아 돌아간 거란 군사는 수천 명에 불과하였다.

이를 계기로 고려군은 잇달아 승리하여 거란을 물리칠 수 있었다.

 

옛날에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두 겹으로 쌓았는데, 내성과 외성이다. 그런데 고려의 서울인 개성에는 내성밖에 없었다. 강감찬은 여러 차레 거란족을 물리치면서, 거란족과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개성 주위에 외성을 쌓아야만 된다고 생각하였다.

강감찬의 건의를 받은 현종은 왕가도를 시켜 7킬로미터에 이르는 외성을 21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개성이 내성과 외성을 갖추면서 고려의 국방은 더욱 튼튼하게 되었다.

 

사당 정문인 안국문

 

 

경내에 있는 3층 석탑

 

안국사 전경

 

강감찬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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