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기념관에는 이봉창의사와 관계된 자료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봉창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교외 요요기 연병장에서
육군 관병식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본국왕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 10일 이치가와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윤봉길의사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의지를 더욱 굳혔다고 한다.
상하이 의거 이틀 전, 윤봉길 의사가 쓰신 유서와 이력서,(보물 제 568호, 국립중앙박물관)
자신의 사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유서이며, 마지막 장에 자신의 유족을 적었다.
유서를 쓰실 때 윤봉길의사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윤봉길의사는 의거 전에 훙커우공원을 답사하며 시를 남기셨다.
김구선생의 시계는 2원이고,
윤봉길의사의 시계는 6원이었다.
의거 장소로 떠나기 전 윤봉길의사는 김구선생의 시계와 서로 맞바꾸었다.
김구선생의 시계
윤봉길의사의 바꾼 시계로 일본이 의사의 유품을 가족에게 반환할 때 돌아왔다.(보물 제568호)
상하이 의거 중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핏자국이 남아있다.
윤봉길의사 신문 시의 사진,순국하시기 전 집행관의 "마지막 할 말은 없는가?"라는 물음에"사형은 이미 각오하여 하등의 할 말이 없다."라면서 일본인에게 굳은 의사의 마음을 침착하게 나타내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25세의 나이가 느껴지기 어려울 정도의...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