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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일 오늘의 역사, 돈의문을 철거해 총독부에서 경매에 붙이다

돈의문은 서대문으로 '돈'은  ‘의(義)를 북돋다’이고, '의'는 서쪽을 가리키므로 '서쪽의 의를 두텁게 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서대문의 위치는 경향신문 앞 정동 사거리였다고 한다. 원래 오늘날 독립문 근처에 있으면서 의주로 가는 사람들이 이용했던 문인데 풍수의 영향, 또는 당시 권력자였던 이숙번의 영향으로 문이 옮겨졌다가 정동사거리에 세종이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동 사거리부터 세종로까지를 새문안길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당시 『조선왕조실록』 1413년 6월 19일 기사에 의하면 ‘풍수학생인 최양선이 돈의문이 궁궐의 팔과 다리 역할인데 이를 사람과 말이 다녀서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라고 기록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경희궁 자리에 서전문을 세웠다가 세종대왕 때 정동사거리에 돈의문을 세웠다고 한다..

삼일절에 생각해보는 글

삼일절에 이재운 작가의 글을 인용해본다. - 삼일절, 일본은 몸부림치며 미워하는 척하면서 중국에는 너무 깊은 사랑에 빠진 '셰셰' 사대주의자들에게 한 마디한다서대문에 독립문이 있다.등신 아무개(난 이 자가 딱 5년 사이에 이렇게 나라를 깡그리 말아먹은 줄 몰랐다)는 여기서 일제로부터 독립하자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등신이 오늘날 우리나라 곳곳에 중국 세력이 깊숙히 침투하도록 교묘하게 길 내주고 터준 놈이다. 역사를 모르는 놈이니 독립문이 뭔지도 모른 것이다.조선이 망해가던 무렵, 나라의 기틀부터 바꿔 서양 오랑캐에 맞서자, 중국 속국에서 벗어나 과학기술로 벌떡 일어나는 새 시대를 맞이하자고 깃발 든 개화파들이 돈을 모아 세운 게 독립문이다. 중국 사신 맞이하던 영은문을 때려부수고 '조선은 독립국..

3월1일 오늘의 역사, 3.1운동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18년 1월 8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총 14개 조항의 '평화 원칙'을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전쟁을 방지할 목적으로 국제연맹을 결성하고, 민족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민족자결주의가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의 식민지에 관한 것으로 승전국과는 관계는 없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독립지사들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으며, 이때  '고종 황제의 독살설'이 나오면서 반일사상이 널리 퍼지며 항일운동을 펼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용운을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한용운의 '공약삼장'을 작성하고, 고종황제의 장례일에 맞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1919년 3월 1일, 천도교..

2월28일 오늘의 역사, 2.28학생민주의거

2월 28일 4.19민주혁명에 영향을 준 2.28학생민주의거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에 정부가 수립된 이후 처음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1960년 2월 27일에는 자유당이, 2월 28일 수성천변에서는 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이 예정돼 있었다.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선거운동 기간 중 세상을 떠나며 장면 박사는 부통령 후보였지만, 대통령 후보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이에 자유당 경북도당은 2월 10일 대구의 각 기관장과 학교장을 긴급 소집해  첫째, 27일 토요일 자유당 유세장에는 가구당 1명씩 참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낮 12시까지 업무와 수업을 모두 끝낼 것둘째, 민주당 유세일인 28일 일요일에는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유세가 끝날 때까지 동회와 직장 단위로 각..

2월27일 오늘의 역사, 독립선언서 서명과 인쇄

1919년 2월 27일,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이 재동의 최린 집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이로써 3.1운동의 발판이 마련되었고,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이정표가 되었다.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기초했지만  그가  “일생을 학자로 마칠 생각이라 독립운동의 표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선언서는 작성하겠다.”고 하자, 한용운이 "독립운동에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선언서를 짓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자신이 쓰겠다고 했으나 이미 초고가 완성되어 , 공약삼장만을 덧붙이게 되었다.  1,762자로 된 독립선언서에는 조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내용과 대일 항쟁에서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민족자결에 의한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독립선언서는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세계에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 계..

2월23일 오늘의 역사, 애국지사 박동완 순국

박동완은 1885년 12월 27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서 통훈대부 감목관을 지낸 박순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호는 근곡(槿谷)이고, 필명으로 근곡생(槿谷生), 근생(槿生) 혹은 근(槿)이며 비교적 여유있는 집안에서 자랐다.5세까지 한학을 공부했으며, 한성중학교를 거쳐 한성외국어학교에 진학해 영어를 배우며 근대학문을 익히다가 1911년 한성외국어학교가 폐쇄되자 배재학당 대학부로 전학하면서 개신교에 입문하였다.1919년 1월경 신문을 통해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읽고, 이번 기회에 조선도 일제 통치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박희도를 통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게 됐다.​당초 독립선언서 발표 장소는 탑골공원이었으나, 자칫 소요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

나비박사 석주명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곤충학자 우리나라 나비를 채집해 연구하면서 분류 방식을 바로잡아 세계적인 곤충 학자가 되었다. 일제의 억압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것을 찾아 탐구하여 귀한 자료를 남겨 주었으나, 한국 전쟁의 혼란 속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석주명은 점심시간마다 두부나 땅콩을 먹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이 결코 가난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황한 마리 가격보다 비싼 타자기를 그에게 선물할 정도였으니가난보다는 공부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삼일 운동으로 민족 정신에 눈떠, 숭실고등보통학교 시절에는 일제의 교육 정책에 반대해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 뒤에 송도고등보통학교로 옮긴 석주명은 조류학자 원홍구를 만나 우리나라의 농업 발전에 이바지하기로 마음먹고, 1926..

2월22일 오늘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 등장

1886년 2월 22일 한성순보의 후신인 한성주보 제4호 15, 16쪽 두 면에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가 실렸다. 24줄짜리 순 한문 광고였다.광고주 세창양행(世昌洋行)은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무역회사로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의 상해와 천진, 일본의 고베(神戶), 그리고 인천에 지점을 설립(1884년)하고 동아시아에서 서구 물건을 팔던 무역상이었다. 광고는 회사에서 구입할 물건으로 쇠가죽, 호랑이가죽, 여우가죽 등과 사람 머리털, 호랑이 발톱 등을, 팔 물건으로 자명종 시계, 뮤직박스, 서양 천, 성냥, 염료 등을 소개하는 내용을 실었다. 지금처럼 사거나 팔 물건에 대한 사진이나 도안이 없는 글자중심의 정보제공을 위한 광고였다.제목 ‘덕..

2월20일 오늘의 역사, 한인비행사양성소 설립하다

1907년 8월 1일 육군무관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군대 해산으로 군복을 벗은 후 안창호 등과 함께 신민회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반도에 선전 전단을 뿌리기 위해 비행기 조종사 양성에 관심을 가졌다. 1915년 7월 상하이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노백린은 하와이 미국 사령관의 묵인하에 박용만과 함께 국민군단을 창설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이승만, 안창호의 관심 속에 노백린 장군은 공군이 장래 전투에서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해 1920년 2월 20일 미국 본토 윌로우스(Willows)에 '쌀의 왕' 김종림의 후원을 받아 한인비행사학교를  설립했다.노백린은 1920년 3월 1일자 윌로스데일리저널(《Willows Daily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비행학교는 3..

참혹한 현실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이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15,6세에 군대에 가서 유학을 보내준다는 이름 하에 우크라이나에 파병되었다가 포로가 된 북한군.입대한 후 부모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더구나 북한군의 적개심을 높이기 위해 드론 조종사가 대한민국군이라 허위로 알리는 북한의 선전선동.본인의 삼촌도 15세에 북한군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이 말을 하니 누군가 말해 기가 막힌 적이 있다. "삼촌을 쏜 사람이 미군이나 대한민국군일 수 있지 않느냐?"선친께서 인공기가 그려진 북한군 공군기를 보셨는데도 말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좋게 보고싶은 것만 보이는 듯 하다.김일성 일가의 탐욕과 주민에 대한 수탈은 아랑곳하지않고 북한과 쇼를 하는 모습이 역겹다.민주당은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지금까지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