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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7일 오늘의 역사, 김 27만 속을 일본에 수출

대한민국은 2024년 현재 세계 6위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이다.1인당 GDP도 35,000달러로 인구 5,000만 이상, 1인당 GDP 3만 달러 이상의 국가가 되었다.그런데 1947년 오늘 뉴스 제목은'김 27만 속을 일본에 수출'이다.1953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약 67달러(현재 가치로 약 800달러 수준)  , 북한의 80달러보다 오히려 적었다.이 시절에 김 25만속을 수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으니 신문에 대서특필된 것이다.당시에 우리나라의 수출품은 농, 수산품 위주였으니...국가 경제의 기반이 쌀과 보리 중심의 주요 곡물 생산이다.농업중심의 경제 구조였으니, 25만속의 김을 수출한 것은 신문에 나올만 한 것이다.지금의 성과를 이룬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하겠다.오늘날의 영화는 정부와 ..

3월26일 오늘의 역사, 천안함 피격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2.5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 PCC-772 '천안함' 이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물기둥과 함께 물위로 솟아오르며 두 동강이 났다.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46명이 전사하고, 이후 수색작업에 참여한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으며, 수색을 돕던 민간 어선의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었다. 먼저, 나라를 위해 애써주신 우리 국군장병과 민간인 여러분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빕니다.천안함은 대한조선공사에서 1989년 진수한 초계함으로 길이 88m, 폭 10m, 속력 57km를 달리며 100명 내외의 해군이 해상에서 적의 침입을 경게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이 참여한 4개국 73명의 조사단이 합동 조사를 하여 북한의 '연..

3월24일 오늘의 역사, 맥아더의 38선 이북 진격 명령

1951년 3월 24일은, UN 군 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이, '38선 이북에 대한 UN 군의 진격', 곧 북진 명령을 내린 날이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완전히 뒤집은 UN 군은, 인민군을 몰아붙여 압록강에 이르렀지만 은밀하게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11월에는 장진호 전투에서 후퇴한 후, 1월 4일에는 후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수원 남부와 삼척을 연결하는 37도선까지 밀렸다.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파악한 맥아더는 "중국의 해안 봉쇄, 만주의 산업시설 폭격, 장개석 군대의 투입 등 '제한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만주로 전쟁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맥아더의 주장은 전쟁을 그만두..

3월23일 오늘의 역사, 임시정부 2대 대통령으로 박은식 선생 선출

조선 말기,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다. 많은 역사책과 위인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황해도 황주군 남면에서 1859년 9월 30일에 태어난 박은식은 열 살 무렵부터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특히 주자학을 연구하는 데 힘써 일찍부터 학자로서 이름을 날렸다.그는 일본의 침략이 날로 강화되자,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다가독립협회가 해산되자 장지연, 남궁 억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만들어 일제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백성들을 깨우쳤다.의 주필로서 많은 논설을 써서 국권회복과 애국계몽운동을 벌여나갔다. 한편 유교 개혁을 주장하고, 유교계를 친일파의 소굴로 만들려는 일제의 공작을 막기 위해 나섰다.결국 나라를 빼앗기자, 박은식은 1911년 중국 만주로 건너가 국사 연구를 통해 구국 독립..

기회를 놓치면 다시 잡기 어려운 법....

[선데이 칼럼] 쑨원 총통의 걱정, 윤석열 대통령의 실수 | 중앙일보 (joongang.co.kr) [선데이 칼럼] 쑨원 총통의 걱정, 윤석열 대통령의 실수 | 중앙일보중국의 국부 쑨원이 공화국을 창설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부패였다. 그러고 보니 고시원을 세워도, 그 고시원은 또 누가 감시할 것인가? 로마법 이래 통치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누가 감시자를www.joongang.co.kr기회는 한번뿐인데...

3월 22일 오늘의 역사, 윤보선 4대 대통령 하야

1897년에 태어난 윤보선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연소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다 영국으로 에든버러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서 조선총독부의 중요감시대상이기에 친일을,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일제에서 독립하자 한국국민당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하고, 한국민주당으로 흡수되며 계속 활동하였다. 집안의 명성에 능숙한 영어, 그리고 일제 식민지 말기 실시된 창씨개명에 참여하지 않은 윤보선에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려고 했다. 함께 활동한 송진우와 장덕수가 암살당하자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지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서울시장으로 문맹퇴치를 위해 초등학교를 증설하고 허례허식 등의 개선을 위한 신생활운동 등을 실시하였다.이어서 상공부 장관 등을 역임하다가 이승만과의 의견 차이로 갈라섰다. 19..

정명공주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서 선조 36년(1603)에 태어났다.선조가 52세에 난 공주였기에 사랑을 독차지했다.석봉 한호,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 등 조선시대에 이름을 날린 서예가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서예에 능했다.서예에 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광해군에 의해 동생인 영창대군이 증살되고, 어머니 인목대비와 함께 서궁에 유폐되면서 모든 시름을 잊기 위해 서예에 몰두했기 때문이다.인조 반정 후 공주로 복권된 정명공주는 3살 연하인 노론 명문가 홍주원과 혼인해 7남1녀를 두었다.원래 공주의 집은 50간을 넘지 못했으나, 정명공주는 200간이 넘었다니....그런데 아들과 며느리, 심지어 손자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인조의 의심병은 고모인 정명공주에게도 이어졌다.여러 차례의 의심과 갈등이 있었지만 정명공주는 그때마..

3월16일 오늘의 역사, 주문진 간첩 침투사건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현 강릉시 주문진읍)에 1969년 3월 16일 0시 50분경 무장간첩 6명이 칼빈총과 M1총으로 무장한 간첩들이 방첩대원이라고 하면서 강남여인숙에 침입해 주인을 앞세우고 투숙자 9명에게 "우리는 방첩대원이며 조사할 것이 있으니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며 협박해 주민등록증 4매, 승선증 1매, 공무원 신분증 1매, 숙박부 1권을 가지고 도망쳤다.그 후 1시 20분경 무장간첩 중 4명이 육군대위, 중사, 병장복장과 사복차림을 하고 강남여인숙으로부터 800m 정도 떨어진 선창가 부근에 자리한 주문진 수상경비소(오늘날 해양경찰파출소)에 침입하여 당시 근무 교대 중이던 206전투경찰대 소속 순경 2명과 사환 1명에게 "우리는 방첩대원이다. 근무태도가 부실하다"며 포박하려고 하였다. 이에 염관수..

3.15부정 선거의 방법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은 부통령으로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를 하였다.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두고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중, 1960년 2월 15일 갑자기 세상을 떠나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이 단독후보가 되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에 맞서 민주당이 내세운 신익희가 유세 중 세상을 떠난 것에 이어 민주당은 두번째로 대선후보 없이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사실 1956년에 대통령 후보 단일화로 신익희와 조봉암이 합의했다가 신익희의 사망으로 조봉암을 민주당에서 지지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나이였다. 1875년생인 이 전대통령은 당시 85세였기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유당은 부통령을 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