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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어버이 날’의 유래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영국과 그리스에서는 사순절의 첫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부모님께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았던 풍습에서 유래가 되었다. 또 다른 유래는 1910년경 미국의 한 여성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여성의 미담을 전해들은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이 1914년에 5월의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부터 정식 기념일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가 살아계신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면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각종 모임를 열며, 가정에서는..

김구 선생의 피난처, 재청별장

1932년 여름, 일제는 상해-항주 철도를 중심으로 김구 선생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해, 가흥 거리에는 일제가 심어놓은 밀정이 김구 선생을 찾기 위해 오갔다.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에게도 자신이 숨어있는 곳을 알리지 않았던 김구 선생은 주푸청 며느리(주자루이) 친정 소유인 재청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이를 낳은 지 6개월도 안된 주자루이가 하이옌의 피난처로 안내하기 위해 무더운 여름날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7, 8월 염천(炎天)에 친정의 여노비 한명에게 나의 식료와 각종 물품을 들려 가지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서남산령 고개를 넘는 모습을 보며 김구 선생은 감동했다.'고 에 적고 있다. 이어서 '우리 국가가 독립하게 된다면 우리 자손이나 동포 누가 저부인의 용감성과 친절을 흠모하고 존경하지 않으..

중국 2024.05.06

중국 가흥 김구선생 서남호 피난처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가 있은 후 일제는 안창호 선생을 포함한 애국지사 여러 명을 체포해 고문을 가하고, 상하이의 한국인들을 탄압하였다. 이에 김구 선생은 '윤봉길의 홍구공원(현 루쉰공원) 의거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한인애국단이 계획했으며, 애국단 단장은 자신'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김구 선생은 자신에게 내걸린 현상금이 20만 위안에서 60만 위안(현 가치로 200억 원)으로 높아지고감시망과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중국인과 밀정의 일제에게 신고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강성 가흥(현 저장성 자싱)으로 피신한다.김구 선생이 피신한 서남호 호수에 면한 매만구 76호는 주푸청 수양아들 별채였다.김구 선생은 뱃사공 주애보와 부부로 위장하고 선상생활을 하면서 중국인으로 행세하였다.이름도 '장진구', '..

중국 2024.05.05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1919년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해 3·1 운동이 일어났다.한반도 전체에서 온 국민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 운동을 일제는 총칼로 탄압을 가했다.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만세 운동을 이어가면서 한민족을 하나로 결집시켜 이끌어갈 정부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 결과 한성(서울)과 연해주, 상하이 등에 정부가 들어섰다.이후 세 곳에 흩어져 있는 정부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통합되었다.당시 임시 정부가 자리 잡은 곳은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로,  조계지는 프랑스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는 지역으로 일본의 감시를 피하면서 독립운동과 외교활동을 하기 유리한 곳이었다.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대한’, 국민의 나라라는 뜻에서 ‘민국’ 이라고 했다.행정부에 해당하는 임시..

중국 2024.05.04

슬관(蝨官)

“木梳梳了竹梳梳(목소소료죽소소) 亂髮初分蝨自除(난발초분슬자제) 安得大梳千萬尺(안득대소천만척) 一歸黔首蝨無餘(일귀검수슬무여)   얼레빗으로 빗고 나서 참빗으로 빗으니 얽힌 머리털에서 이가 빠져 나오네. 어쩌면 천만 길의 큰 빗을 장만하여 만백성의 이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까.“  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문장가로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譚)>을 쓴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영소(詠梳, 얼레빗으로 빗고 나서)”라는 한시이다. 여기서 얼레빗은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으로 반달모양으로 생겨서 월소(月梳))라고도 한다. 또 참빗은 빗살이 매우 촘촘한 빗으로 얼레빗으로 머리를 한번 대충 다듬고 나서 곱게 빗어 가지런히 정리하거나 비듬ㆍ이 따위를 빼내기 위해 썼다.조선시대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

매헌윤봉길의사

4월 27일부터 4월 30일까지 매헌윤봉길의사 상하이 의거 92주년 행사단과 함께 중국 상하이를 갔다.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11시 40분 일제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 생일과 상하이 사변 승리를 기념하는 축하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단상을 향해 물통 폭탄을 투척해 일본을 공포에 떨게 했다.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인 가와바타 사다쓰구는 사망하고,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으며, 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은 왼쪽 다리가 잘리었고, 3함대 사령관인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은 오른쪽 눈을 잃었다. 특히 시게미쓰 공사는 1945년 미국  미주리함에서 외무장관으로 일본을 대표해 항복문서에 서명한 사람이다.중국 국민당 장제스 총통은 "중국 100만..

교수님들이 일어났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4월 19일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도시에서는 큰 시위가 일어나지 못했다. 6일 후 1960년 4월 25일 전국대학교수 대표들이 모여 시국수습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서면서 탄압에 멈추었던 시위가 다시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날 오후 3시,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인 258명은 ‘대통령을 위시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대법관 등은 3.15부정선거와 4.19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동시에 재선거를 실시하라’는 요지의 14개 항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어 4백여 교수들은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계엄하에서 오후 5시 45분 교문을 나와 종로, 을지로 ..

1993년 소말리아파견 상록수부대 발대식

1993년 4월 23일 소말리아에 파병되는 상록수부대의 발대식이 열렸다. 흔히 상록수부대 하면 1999년 동티모르 파병을 이야기하지만, 1993년 7월부터 1994년 3월 15일까지 소말리아에 파견된 것이 한국군 최초의 유엔평화유지군(PKO)이었다. 제2차 유엔 소말리아 임무(UNSOM II)에 건설공병대대 252명(공병 190명, 장교 30명, 부사관 32명)이 파병하였다. 정식 명칭은 제189건설공병대대이다. 이들은 소말리아 평화유지활동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주로 내전으로 파괴된 도로 보수공사와 주민지원 활동을 수행했다. 상록수부대는 제3차 유엔 앙골라 검증 임무(UNAVEM III)에 건설공병대대 198명(장교 22명, 부사관 16명, 공병 160명)이 1995년 10월부터 파병되어 1996년 12..

신사참배를 반대한 주기철 목사

주기철 목사는 아전 출신인 아버지 주현성과 어머니 조재선 사이의 4형제 중 막내로 1897년 11월 25일 태어났다. 본명은 주기복이었으나, 오산학교에서 세례를 받고 주기철로 개명하였다. 호는 소양(蘇羊)으로 ‘예수의 어린 양’이라는 뜻이다. 웅천 개통학교와 평북 정주군의 오산학교를 졸업한 주기철은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산업을 일으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1915년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헌병대에 연행되었던 주기철은 김익두 목사의 강연에 감명을 받아 1922년 조선예수교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로 나섰다. ‘한민족이 새롭게 거듭나야 조국의 광복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경을 완수..

곡우사리 조기를 가장 으뜸

4월 20일은 곡우(穀雨)이다. 곡식에 비가 내린다는 의미의 곡우는 옛날에는 대단히 중요한 날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날부터 못자리를 비롯한 논과 밭에 씨를 뿌려 한 해 농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못자리나 씨를 뿌릴 때 물은 꼭 필요하므로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농업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파종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중요한 일을 앞둔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정한 행위를 할 수가 없었다. 즉 동물을 잡는 행위, 사냥, 다툼, 금주, 부부관계 등을 삼가했다. 곡우 때처럼 좋은 시기도 없을 듯 하다. 나무에는 물이 한참 오르는 시기이기에 쇠나무의 고로쇠물도 이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곡우무렵에 따는 차잎 또한 최고라고 한다. 곡우에 자연의 기를 많이 받아 한 해를 건강하게 살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