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문센 (1872~1928) 은 캐나다 북쪽 해안과 베링해를 거쳐 태평양을 연결하는 북서항로를 개척하였다.
1903년 3년치 식량을 준비한 아문센은 그조아(Gjoa)호를 타고 킹윌리엄 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1904년까지 2번의 추운 겨울을 지내며 원주민들과 생활하며 추운 지역에서 사는 방법을 배웠다.
바다가 녹자 아문센은 1905년 8월 13일 그조아호를 타고 서쪽으로 출발해 캐나다 북쪽 해안 서쪽 끝, 베링해를 거쳐 태평양을 통과했다. 곧 인류 최초로 북서항로를 통과한 사람이라는 영광이 아문센에게 돌아갔다.
아문센은 문명인이라는 유럽인이 만든 가장 따뜻한 옷보다 원주민이 만든 순록 모피 옷이 따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영국이 항로를 개척하면 주기로 했던 상금을 엉뚱한 사람에게 주었다.
이는 영국이 막 독립을 했지만 가난한 나라 노르웨이 출신에게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문센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강연에 초청받으며 돈을 벌 수 있었다.
아문센의 아려서부터 꿈은 북극점 도달이었다.
그러나 1909년 미국의 피어리 제독이 도달해 성조기를 표시했다고 했는데, 1996년 발견된 피어리의 일기를 분석해보니
북극점에서 40km 미치지 못한 지점이었다.
아문센은 북극점 탐험을 남극점으로 돌렸다.
같은 시기 영국의 해군 로버트 스콧 대령도 남극점 탐험에 나서면서 1,700km의 레이스가 펼쳐졌다.
아문센은 철저히 준비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북극 원주민에게 추위에 사는 방법을 배웠다.
즉 식량은 부족해도 살 수 있기에 52마리의 그린란드 허스키를 준비했다. 짐의 양과 부피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의 먹이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사람이 먹는 식량을 먹이고 때로는 남극에 살고 있는 펭귄ㆍ물개를 잡았다. 탐험대원의 복장은 북극 원주민이 입는 순록 가죽으로 만들었다.
반면 스콧은 17마리의 말을 중심으로 이동 수단을 삼았다. 그러다보니 말의 먹이 때문에 무게가 무거워 이동하는 속도가 느렸고, 크레바스가 있어 이동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터 썰매는 5일 만에 얼어붙어 사용할 수 없었으며, 보조 수단인 개도 소용이 없었다.
아문센과 스콧의 준비 자세가 결국 남극점의 결승점을 가르는 차이가 되었다.
아문센은 11마리의 개만 남기고 41마리는 식량으로 사용한 반면, 개를 애완으로 키우는 영국인에겐 개를 식용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었기에 귀로에 모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남극점 탐험을 마친 아문센은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부른다. 패배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불운이라 부른다."라고 말했다.
아문센은 스콧 등 대원들의 죽음에 죄책감을 평생 지니고 살았다.
아문센은 남극탐험으로 강연 등으로 많은 수입이 생기며 경제적인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아문센 본인도 북극에서 조난당한 탐험가들을 구하기 위해 준비없이 길을 나섰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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