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2월 28일 오늘은 나석주 열사가 우리 농민들을 수탈하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날이다.
지난 7월 26일부터 10월 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나석주 열사의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주제로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김구가 세운 양산학교에서 맺은 사제관계의 인연으로 경무국장인 김구의 경무국 소속 경호원이 되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나석주를 “친하게 믿는 지사요 제자”라고 할 정도로 아끼고 있었다.
그는 임시정부와 교포를 위협하는 일본 첩자와 임시정부를 지키는 일이었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을 꿈꾸던 나석주는 김창숙이 토지수탈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폭파를 제의하자,
중국인 노동자 '마중덕'으로 위장하여 귀국하였다.
중국인으로 활동하며 기회를 엿보던 나석주는 1926년 12월 28일 신문지로 권총을 감싸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맞은 편의
식산은행을 찾았다. 연말이라 많은 사람이 있어 정신이 없는 틈에 은행원 뒤쪽으로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었다.
식산은행이 소란스럽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틈에 동양척식주식회사로 간 나석주는 1층 수위실의 일본인을 사살했다.
그리고 2층 사무실로 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을 사살했다. 토지개량부 기술과장실에 있던 오모리 차장과 아야다 과장을 사살하고는 옆 사무실의 기술과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나온 나석주를 발견한 일본 경찰과 교전을 벌여 경부 다하타 유이지를 사살하고 총격전을 벌이면서 도주했다. 힘들다고 느낀 나석주는 전봇대에 기대어 “우리 2천만 민중아.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였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아라.”라고 외치며 가슴에 총을 쏴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일본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고등계 형사로 악명이 높았던 '미와'의 심문을 받던 중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하며 순국했다.
사망 후 나석주의 유해는 가족들이 서울로 와서 인수해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의 묘지에 매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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