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나비박사 석주명

윤의사 2025. 2. 22. 18:49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곤충학자

 

우리나라 나비를 채집해 연구하면서 분류 방식을 바로잡아 세계적인 곤충 학자가 되었다.

일제의 억압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것을 찾아 탐구하여 귀한 자료를 남겨 주었으나, 한국 전쟁의 혼란 속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석주명은 점심시간마다 두부나 땅콩을 먹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이 결코 가난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황한 마리 가격보다 비싼 타자기를 그에게 선물할 정도였으니가난보다는 공부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

삼일 운동으로 민족 정신에 눈떠, 숭실고등보통학교 시절에는 일제의 교육 정책에 반대해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 뒤에 송도고등보통학교로 옮긴 석주명은 조류학자 원홍구를 만나 우리나라의 농업 발전에 이바지하기로 마음먹고, 1926년 일본의 가고시마고등농림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농업과 곤충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곤충에 많은 관심을 쏟다가, 마침 스승의 권유를 받아들여 나비 연구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나비 분류를 바로잡아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다

석주명은 1931년 이루 송도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나비를 채집하여 밤낮없이 조사하고 연구하였다. 석주명은 연구의 첫 단계인 분류에서부터 문제에 부딪혔는데, 그동안 한국의 나비를 연구해 온 외국 학자들이 모양이 조금만 달라도 다른 종으로 분류해 921종으로 해놓았기 때문이다.

석주명은 수십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하여 무늬 수, 날개 길이, 색깔, 띠 같은 형질을 일일이 측정하고 통계를 내어 잘못 분류된 학명 수백 개를 없애고, 한국 나비를 248종으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담아 <조선산 나비 총목록>을 펴냈고 미국, 일본 등 각국 학자들의 전문 서적에 실려 세계 유명 도서관과 학자들에게 전해졌다. 이로써 마구잡이로 학명을 붙이던 동물 분류학이 제자리를 잡게 되었고, 석주명은 업적을 인정받아 세게적인 학자로 떠올랐다.

 

세계의 걸작인 나비 분포 지도를 만들다

석주명은 나비의 분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뒤 나비의 분포 지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즉 나비들이 어떤 지역에, 어느 정도의 높이에 사는지를 보여 주고, 지역과 높이에 따라 나비들이 갖는 특징을 설명하고 계통을 세웠다.

이러한 나비 분포 지도는 한눈에 한국산 나비의 분포와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가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다니며 나비를 잡고 지리를 살펴 얻어 낸 결과였다. 이 지도는 그가 죽은 뒤에 <한국산 접류 분포도>라는 책으로 나왔는데, 생물 지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걸작으로 손꼽힌다.

미국의 모리스 박사는 석주명의 연구를 높이 평가해 연구비를 아낌없이 지원하였고, 일본인 학자들은 새로 발견된 나비의 학명에 그의 성씨를 뜻하는 세오키아라는 말을 덧붙였다.

 

국학연구의 일환이었다.

석주명 <나비 채집 20년 회고록>을 보면

"조선에 많은 까치나 맹꽁이는 미국에도 소련에도 없고, 조선 사람이 평상시 먹는 쌀은 미국이나 소련에서는 그리 많이 먹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과학에서는 생물학처럼 향토색이 농후한 것이 없어서 조선 생물학이라는 학문도 성립될 수가 있다."

라고 말한 것을 보면 나비 연구나 나비 이름을 순수 우리말로 지은 것이 국학 연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석주명<국학과 생물학>을 보면

"언어에서 개인차를 제거하여 귀납하면 방언이 성립하는 것이고, 여러 방언 사이의 차이점을 조절하면 민족어가 되는 것이고, 민족어들 사이의 공통점들을 계통세우면 언어 분화의 계통을 밝히게 되는 것이다. (중략) 이만하면 방언과 곤충 사이에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아서 연구하는 방법으로 곤충을 연구할 수 있겠고, 곤충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방언을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석주명은 1942년에 제주도에 머무르며, 나비뿐만 아니라 사투리를 연구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이것은 사투리의 분포가 나비의 분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대문이며, 이 과정에서 풍부한 어휘를 알게 되어 고운 우리 말로 나비 이름을 지을 수 있었다. 석주명의 관심은 점차 인구, 문헌, 자연 등 제주도 전반으로 넓혀졌고, 모두 6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나왔다. 제주도는 4.3 항쟁과 6.25 전쟁으로 육지의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해 지금은 옛 모습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이다. 따라서 광복 전에 이루어진 석주명의 연구는 제주 문화를 이해하고 보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6.25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가지 않고 있다가 총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75만 개 이상의 나비를 채집해 조사한 석주명은 전국을 다니면서 한국 나비의 분포상태를 기록하였고, 그 결실로 1973년 <한국산 접류 분포도>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해 1964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고, 2009년 한국과학한림원에 의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2017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었다.(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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