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부터 114년 전인 1910년 12월 1일, 덕수궁에 완공됐다.
덕수궁은 고종이 1919년 1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낸 궁궐이다.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1920년부터 일제는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팔아서 궁궐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그리스 로마양식의 복고로 서양에 유행하였던 콜로니얼(Colonial) 양식의 일종으로 신고전주의를
따른 석조전은 구한말 총세무사 브라운의 권유로 영국사람 하딩(J. R. Harding)이 설계하여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1904년 일본인 고문 메가다와 교체되면서 조선의 마지막 왕실을 상징하는 석조전이 그에 의해 1910년 12월 1일
정면 54m, 너비 31m에 달하는 웅장한 3층 석조 건물로 연건평 1,247평으로 완공되었다.
조선시대 마지막으로 건축된 전각이라 하겠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집무실과 외국 사신들의 접견실로 사용할 목적에서 지어졌다.
1층(반지하)에서는 시종들이 대기하고, 2층은 황제의 접견실, 3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로 사용되었다.
석조전 정원은 서양의 광장에 보이는 잔디와 분수대가 세워졌다.
석조전의 등장은 기존 한식 건물들과 축을 달리하면서 궁궐 공간이나 덕수궁 주변의 건물에 변화를 가져다 주어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많게 되었다. 덕수궁 주변에 정동 제일 교회, 배재학당, 구세군 교회 등이 있는 것은 석조전의
영향이라 하겠다.
석조전에서는 1946년 1월 16일 미국과 소련이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여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의 분단을 결정지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47년에는 국제연합한국위원회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 중 내부가 화재로 피해를 입었다.
덕수궁은 원래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면서 점차 궁궐로 바뀌었다.
특히 고종이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궁궐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대한제국의 비운과 1945년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에는 한반도의 역사를 함께 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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