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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선정전

인정전을 지나 동행각을 지나 문을 통과하면 보물 제 814호 선정전(宣政殿)이 있다. ‘선정(宣政)’이란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뜻이다. 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이 국정을 논하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이다. 편전이란 임금과 신하가 나랏일을 의논하고(상참:常參), 유교경전과 역사를 공부하는(경연:經筵) 곳이다. 상참에 참여할 수 있는 관리는 3품 이상의 당상관 이상이다. 임금이 상참과 경연을 하는 중요한 장소인지라 강화에서 육연(六然) 스님이 굽던 계열의 기와인 청색유리기와로 만들어졌다. 선정전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집이다. 선정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이다. 청지와집으로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용마루 좌우 끝에는 장식의 부속 기와인 ‘취두’가 설치되었다. ..

창덕궁 인정전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경복궁의 박석을 생각한다. 창덕궁의 박석은 경복궁의 자연스러움만은 못하지만, 박석 사이로 흐르는 물은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언제나 햇볕이 쨍쨍, 아쉬움이 크다. 품계석 사이에는 임금이 드나드는 어도가 박석보다 높게 나있다. 창덕궁 박석과 품계석 박석 사이로 난 잔디는 품계석 뒤로 서있던 관리들에게는 아주 좋은 쉼터이다. 왜냐하면 뜨거운 햇볕과 돌, 거기에 검은 색 가죽신은 발을 더욱 따스하게 했다. 박석 사이의 잔디는 뜨거움을 해소시키는 청량제라고나 할까? '궁궐(宮闕)'은 내전을 뜻하는 '궁'과 외전을 뜻하는 '궐'로 구분한다. 내전은 임금과 그 가족과 권속들이 살림하는 구역이며, 외전은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보는 곳이..

창덕궁 돈화문과 진선문

창덕궁은 태종이 창건한 조선의 제 2궁이다. 임진왜란 때 정궁인 경복궁이 불타자, 경복궁 자리가 불길하다고 하여 광해군이 창덕궁을 정비하고 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인조반정 때 불타버린 것을 20여 년 후에 다시 복원하여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까지 270여년간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敦化門)이다. 다른 궁궐의 문이 삼문(三門)인 것에 비하여, 돈화문은 오문(五門)이다. 태종이 정도전을 죽이고 왕자의 난을 통해 임금이 되었지만, 정도전의 요동 정벌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바로 명나라의 황제가 사는 궁궐인 자금성에서나 볼 수 있는 오문을 만든 것은 자주 국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것은 아버지 이성계의 친구이자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은 정도전의 영향일 것..

창덕궁의 효명세자와 인연이 있는 전각들

오늘도 '구르미 드린 달빛'의 주인공 효명세자와 관련있는 전각을 찾아본다. 먼저 창덕궁의 희정당을 들 수 있다. 희정당은 연산군 때 불에 타서 다시 지으면서 숭문당을 희정당으로 바꾸었다. 효명세자는 이곳에서 조선 후기 개화론자이자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를 만나 개혁의 청사진을 계획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17년 불에 탄 것을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이건하여 다시 세워진 것이다. 희정당의 모습 불로문을 지나 연못을 만난다. 이곳이 효명세자가 부왕인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한 전각을 짓는다. 이 전각은 부모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개혁의 굼을 펼치기 위한 전각이기도 하다. 연경당의 정문은 장락문(長樂門), 곧 즐거움을 오래도록 누리는 곳에 들어가는 문이다. 장락문을 지나면 두 개의 문을 ..

조선 왕릉 수릉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 '구르미 드는 달빛' 의 주인공인 효명세자 (후에 익종으로, 다시 고종 때 문조황제로 추존됨).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사이에서 1809년 태어났다. 당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아래에서 순조는 정치를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안동김씨의 세도하에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조는 38세 되던 1827년에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했다. 대리청정을 위임받은 세자는 개혁 정치를 실시하기 위하여 많은 과거 시험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부정으로 얼룩져 안동김씨의 등용문이었던 과거가 김노, 홍기섭, 김노경, 이인부, 김정희와 같은 전국의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나아가 안동김씨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비변사 당상들을 감봉 조치하여 개혁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어서 초산 출..

[스크랩]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을 만든 이유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근간/책이있는마을 나는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는 시론을 공부했다. 초급 과정에서는 김동리 선생으로부터 정확한 단어와 문장을 만드는 법을 반복해서 배웠다. 서정주 선생과 구상 선생도 시와 시어를 가르쳐주셨다. 그때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