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역사인물백과

목화솜을 전해온 문익점 선생

윤의사 2016. 9. 5. 20:15

고려 후기의 문신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몰래 들여와 널리 퍼뜨렸다. 이후 백성들은 무명옷을 입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되었고, 나아가 목화는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익점의 호는 삼우당, 자는 일신, 시호는 충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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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은 젊은 시절 국자감에 입학해 유학을 배웠다. 그리고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쳤다. 1363년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중국 남쪽 지방인 운남으로 귀양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문익점은 벌판을 하얗게 덮고 있는 목화를 보았다. 당시 원나라 사람들은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짠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었던 것이다. 문익점은 돌아오면서 눈여겨 보았던 목화씨를 붓두껑에 넣어 몰래 고려로 가져왔다. 하지만 문익점은 귀국하자마자 곧 누명을 쓰고 고향인 경상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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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를 들여와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다

문익점은 고향 산청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씨를 심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재배 기술을 몰라 고작 한 그루만 살려 내었다. 그러나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목화 재배 기술을 알아내 산청 일대에 널리 퍼지게 하였다.

이제 목화에서 실을 뽑는 법만 알아내면 되었다. 다행히 정천익의 집에 머물던 원나라 승려가 목화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법을 알고 있어 배울 수 있었다.

정천익은 이 기술을 집안의 노비들에게 가르치는 한편, 마을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었다. 이리하여 목화 재배법과 옷감 짜는 법은 금세 전국으로 퍼졌다.

이렇게 목화가 나라 전체에 널리 퍼지자, 추운 겨울에도 얇은 삼베옷으로 버텨야 했던 백성들은 무명옷을 입고 따뜻하게 지내게 되었다. 나아가 목화는 고려의 중요한 수출품이 되고, 세금으로 걷히기도 하고, 화폐처럼 쓰이기도 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유학자 조식은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와 퍼뜨린 것을 가르켜 “백성에게 옷을 해 입힌 것이 옛날 중국에서 후직씨가 농사를 시작한 것과 같다.”며 존경을 나타냈다.


다음은 목화가 솜이 되는 과정의 사진이다.


흰색 목화꽃이 피어


분홍색 목화꽃으로 변하고


짙은 분홍색으로 바뀌었다가

 

 

 목화열매가 열리고

목화솜이 열린다


이 보잘 것 없는 것 같은 목화솜이 우리나라 백성들의 추위를 막아준 가장 큰 역할을 해주었다.

 

목화와 씨앗을 분리시키는 씨아틀

 

씨아틀을 통해 씨와 분리되면 우리가 사용하는 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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