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의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뒤에 금산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들의 시신을 거두어 ‘7백 의총’을 만들었다.
조헌은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었지만, 대쪽 같은 성격 때문에 관직 생활이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얼마 안 가 벼슬에서 스스로 물러난 뒤,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은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스님 영규가 이끄는 승병 500여 명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되찾은 뒤,
충청도 금산에서 호남 지방으로 진출하려는 일본군에 맞섰다.
이때 의병들은 화살이 다 떨어지자 몸으로 막아서며 싸우다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일본군이 물러간 뒤, 싸움터에 널려 있던 700구의 시체를 거두어 하나의 커다란 무덤을 만들었는데,
바로 ‘7백 의총’이다.
고경명, 김천일, 곽재우와 함께 임진난 4충신의 한 명이다.
조헌의 사당인 표충사에 모신 영정
신도비로 김상헌이 글을,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사당인 표충사
옥천에 있는 묘, 세상을 떠난 뒤 44년 만에 송시열이 아늑한 곳에 묘를 쓰기 위해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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