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역사인물백과

김수로왕

윤의사 2017. 9. 19. 09:13

가야의 첫 임금,

가락국을 세운 임금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상자 안에 담긴 금빛 알을 개고 나왔다.

함께 나온 다섯 아이들과 함께 가야국을 다스렸는데,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하는 등

가야의 국가틀을 만들었다.

 

김수로왕이 어떻게 태어나 가락국(금관가야)을 다스렸는지에 대해서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세상이 열린 이후로 가락 지역(지금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는 아직 나라가 없어서 왕이나 관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구지봉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구지봉으로 달려가자 소리가 더욱 뚜렷해졌다.

그것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라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임금을 만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기꺼이 이 말을 따랐다.

얼마 뒤 하늘에서 자주색 끈에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매달려 내려 왔다.

상자 안에는 해처럼 둥근 황금빛 알 여섯 개가 있었다.

사람들은 놀랍고 기뻐서 알을 향해 수없이 절을 한 뒤, 부족장 가운데 하나인 아도간의 집 탁자 위에 두었다. 13일째 되던 날, 금빛 상자를 열자 여섯 명의 사내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잘 자라 키가 구척이나 되고 신비롭고 빼어난 용모를 지녔는데,

금빛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이라 하고,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는 수로라고 불렀다.

 

가야를 세우고, 허황옥과 결혼하다

부족장들은 나라 이름을 가락국이라 하고 김수로를 임금으로 받들었다.

나머지 사내 아이들도 각각 다섯 가야 즉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영섯 가야국은 서쪽으로는 창해, 동쪽으로는 황산강, 서북쪽으로는 지리산, 동북족으로는 가야산에 이르렀다.

김수로왕은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해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뒤 부지런히 나라일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바다를 건너온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처럼 김수로왕이 바다 건너 인도의 공주를 왕비로 맞은 것을 보면,

당시 가야가 바다를 통해 다른 나라와 교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철기 문화를 꽃피우다

김수로왕은 157년 동안 가야를 다스리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하는데,

자료가 거의 없어 구체적인 사례는 알 수가 없다.

김수로왕이 죽고 여러 아들들 가운데 맏아들 거등왕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가야는 이후 풍부한 철생산을 바탕으로 수준높은 철기 문화를 곷피웠고, 이웃한 낙랑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일본은 고대 국가를 형성하는데 가야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TIP) 삼국시대와 가야

보통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던 시대를 일러 삼국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가야 역시 서기 42년에 세워진 뒤 520년 동안이나 존속했던 엄연한 독립 국가였다. 그 영토 또한 백제나 신라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지 못할까? 무엇보다 가야가 여섯으로 나뉜 연맹 국가로써 강력한 고대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신라에게 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유사>5가야나 <가락국기>말고는 다른 세 나라에 비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으며, 발굴되는 유물 도한 매우 적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한 때 가야는 매우 발달된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일찍부터 해외로 진출하여 활발한 문화 교류도 했던 강력한 나라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역사의 대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삼국시대에서 빗겨가고 말았다.

 

 

김수로왕릉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파사탑

 

쌍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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