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스크랩] 고산자 김정호, 세상의 길을 내다

윤의사 2016. 9. 4. 16:03

중국땅 중국산하만 알던 조선 사회에 던진 우리땅 우리 산하 이야기 

<대동여지도>


* 이 소설은 1994년에 처음 쓴 '청소년 역사소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3번째로 출간하는 것이다.

* 이번 판본은 청소년용에서 일반용으로 고쳤다. 

* 김정호가 처음에 만든 지도는 청구도였다. 청구는 파란언덕이란 뜻으로 곧 중국에서 부르는 우리나라 별칭이었다. 삼국사기에 나온다. 다만 한자 표기는 원래 청구(靑丘)인데 공자의 이름 공구孔丘를 피하기 위해 청구(靑邱)로 적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김정호도 청구도(靑邱圖)로 표기했다.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는 조선을 대동大東으로 표기하여 나라의 자존심을 더 드러내었다. 여기서 그는 지도를 나타내는 중국식 표현인 여지輿地란 어휘를 썼는데 이것은 지구가 그냥 땅이 아니라 <사람이 타고 있는 수레같은 땅>이란 뜻이다. 이런 식으로 우주는 '하늘의 수레'란 의미로 감여堪輿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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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땅 중국산하만 알던 조선 사회에 던진

우리땅 우리 산하 이야기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가 나오기 전 우리나라에는 백성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지도가 없었다.

그래서 강이라면 황하, 장강만 있는 줄 알고 산이라면 태산, 화산, 숭산 등 중국의 5악만 읊조리고땅이라면 기주, 연주 등 중국 9주만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조선의 문학, 시조, 판소리, 산수화 등 거의 모든 문화예술을 하던 작가, 화가, 시인, 가수들은 몸은 비록 조선에 있으되 그 사실을 숨기고, 그 머리는 늘 중국에 두고 있었다. 소설이든 가사든 시조든 판소리든 중국의 산하를 읊은 문인은 많아도 조선의 산하를 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화가들은 가보지도 않은 계림과 소주의 남방산수만 눈감고 그려댔다. 입만 열면 중국 땅, 중국 산, 중국 강, 중국 사람, 중국 역사를 들먹였다. 조선 사람이 쓴 문학작품의 주인공도 늘 중국인이었다. 임금에게 올리는 상주문, 장계, 상소문에 온통 중국 고사만 바글바글할뿐 신라 때, 고려 때 누가 무엇을 했는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구운몽>의 주인공과 등장인물은 모두 중국인이고, 이들은 중국 땅에서 활약했다. <사씨남정기>는 장희빈을 모략하고 인현왕후를 띄우려고 쓴 소설인데, 정작 주인공 유연수는 중국인이고, 무대도 중국이다.

그래도 조선사람들은 중국이며 중국인이 우리땅 우리 백성이려니 알고 재미나게 읽어주었다. 그래서 조선의 혼은 중국에 다 가 있었다. 일제시대 식민지 백성이 하던 친일문학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조선의 산하를 그림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조선의 춤을 추었다.

 

하지만 <대동여지도> 이후 비로소 우리는 우리 땅과 우리 사람에 관심을 갖고 우리 이야기, 우리 그림, 우리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황하와 장강에서 눈을 돌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들여다보고, 태산과 천산에서 눈을 돌려 백두산과 지리산을 노래한 것이다. <대동여지도>의 가치는 바로 우리 민족정신을 일깨운 위대한 작품이라는 데 있다.

이처럼 김정호는 조선사람들에게 이 땅의 강과 산, 들과 바다를 그림으로 그려 알리고, 글로 적어 설명했다. 그제야 우리땅에 누구 살며, 어떻게 살며, 물산이 뭔지, 어떤 역사가 깃들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의 역사만 외우고, 중국인만 입에 올리고, 중국의 산하만 그리고 노래하던 조선인들에게 조선에도 길이 있고, 사람이 있고, 강과 산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우리 학문은, 실학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대동여지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대동여지도>는 사대모화사상을 떨치고 일어난 실학정신의 꽃이다.


* 아래 그림은 필자의 선대인 이방운 화가의 그림이다. 제천 의림지, 고성 삼일포 등 우리나라 산하와 우리나라 사람, 동물 등 우리 그림을 그리셨다.


출처 : 알탄하우스
글쓴이 : 알탄하우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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