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화가 이중섭>을 출판한 <책이있는마을> 식구들이 망우리 이중섭 묘에 가서 책과 소주를 올렸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즐기신 소주 한 병과 소설 책이다. 선생께서 왕소금으로 드시던 그 소주를 기려 안주를 다로 올리지 않았다.
나는 역사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때마다 이 분들의 고향이나 발자취, 무덤 등을 찾아가 주인공의 영혼과 대화를 나눈다.
우리나라 인물이라면 가까워서 찾아뵙기 좋은데,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천년영웅 칭기즈칸>을 쓸 때는 칭기즈칸의 고향에 가서 산언덕으로 올라오는 바람에게 그의 소식을 물었다. 그때 책 한 질도 비닐에 싸서 탄생비 앞에 올려놓았다. 그가 싸우던 오논강, 고비사막, 만리장성 등에서 병사들의 함성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 제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예니세이강에 가고 싶었는데 거긴 아직 가지 못했다. 다만 주인공이던 제베와 초희를 느끼기 위해 그들이 넘은 알타이산을 나도 넘었다.
<상왕 여불위>는 신문연재 당시에 중국 함양, 서안에 가서 여불위, 진시황, 조희 등의 영혼을 찾아 묻고 위로했다. 그들이 살던 궁전에 가서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여불위가 처음 옥 장사를 관두고 사람 장사에 나섰던 조나라 수도에 가서 그가 조희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인질로 있던 이인을 만나던 곳에 가서 그들을 느꼈다.
<태사룡의 삼국지>를 쓸 때는 조조의 고향이며, 그가 드나들던 낙양성, 전적지 등을 다니며 왜 그토록 바람을 가르며 천하를 달렸는지 물었다. 북망산에서 그의 아들의 무덤도 보았다.
태공망 강여상이 낚시질하던 위수, 달마가 면벽수행하던 소림사 그 석굴 등 나는 내가 다루는 역사인물을 느끼기 위해 최선을 다해본다.
<하늘북소리>에 등장시킨 '나모하린'에게는 너무 미안해 일부러 만주 여진족 마을에 가서 잠을 잔 적도 있다.
<황금부적> 때는 모악산에 가서 그가 깨달음을 이룬 산신각을 들여다보며 묻고 또 물었다.
소설 토정비결 2부로 쓴 <당취> 주인공 불두를 기리려면 금강산 유점사에 가야 하는데 아직 못갔고, 불두의 여인 '여진'을 기리려면 일본에 가야 하는데 아직 못갔다.
이처럼 내가 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등장인물 등을 찾아가 대화하고 감사드리는 습관이 든 것은, <소설 토정비결>을 쓸 때 보령에 가서 이지함 선생의 무덤에 절하고, 무덤 흙 약간을 구해와 책상에 올려놓고 기도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역사소설을 주로 써온만큼 나는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서 그때 왜 그러셨느냐, 이 결정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 이렇게 그들 인생의 고비에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습관 때문에 성격을 분석하는 <바이오코드>를 개발하게 되었고, 나아가 이분들이 남긴 글을 읽기 위해한문을 공부하고, 이분들 생각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우리말 사전을 깊이 파고들어 내 사전 10여권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내 소설에는 낯설거나 어려운 한자어가 거의 없다.
특히 소설을 실제로 쓰는 나와 달리 내 소설을 출판하여 상품으로 파는 출판사도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출간하자마자 출판사 사장에게 주인공의 무덤이나 연고지를 찾아가 고유하라고 청한다.
최근 몇년간 내 소설을 전문으로 출판해주는 <책이있는마을> 사장은 으레 그러는 줄 알고 책이 나올 때마다 책과 제물을 준비해간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이번에는 망우리 이중섭 묘를 다녀왔다. 고맙다. 비록 이중섭 선생님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지만 소설이 상품이 되어 팔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 주인인 이중섭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감사를 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중섭 선생님 그림은 저작권이 만료되어 공짜로 마음껏 책에 실었다. 두루두루 주인공에게 감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가짜화가'인 이허중은 내 가슴에서 탄생한 인물이니 내가 알아서 추모했다. 그가 섶섬을 바라보며 자살한 제주 5.16도로, 거긴 내가 직접 찾아가 여기서 죽을까, 저기서 죽을까 자리까지 봐가며 죽음을 설정했다.
원래 서대문형무소에서 보내줄까 생각하다가 그건 너무 쉬우니 더 멋있게 가자고 내가 생각을 바꾸어 하늘 가는 무대를 제주도로 설정했다.
이런 사정을 이허중도 이해해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죽자. 이중섭 선생님은 나이 마흔에 돌아가셨다. 너는 그나마 행복했으니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섶섬을 바라보며 죽게 해주겠다."고 설득했다.
나는 내 소설에 등장한 모든 분들께 늘 감사하며 산다.
날 먹여살리신 분들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 서울 망우리공동묘지 103535 이중섭의 묘
- 대향이중섭화백묘비라고 적혀 있다. 대향(大鄕)은 이중섭의 초기 호다. 큰마을이라는 뜻인데 일가족으로 이루려던 대향은 만들지 못하고,
망우리 공동묘지로 대향을 이루셨다. 이 조각은 1957년 조각가 차근호 씨가 제작했다.
차근호 씨는 이중섭의 고향 후배인데, 장례 때 이중섭 형을 따라가겠다며 구덩이로 뛰어든 분이다. 이 분 일화에서 허구인물 '가짜화가' 이허중이 탄생했다.
- (소설 속 부분)
이허중이 망우리에 갔을 때 이중섭의 친구, 지인, 화가들이 여러 명 모여 있었다. 광중에 막 유골함을 넣으려던 참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이허중은 광중으로 들어가 유골함을 가슴에 안았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비록 정신병원에서 두어 달 배운 것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중섭은 이허중의 유일한 스승이다.
어린 이허중이 워낙 구슬프게 울자 이중섭의 친구들이 달려들어 위로했다. 그러면서 누구냐고 물었다.
이허중은 뭐라고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선생님을 좀 알아요.”
이허중은 남들이 이중섭의 유골함을 향해 절을 할 때 거기 끼어서 넙죽 절을 올렸다. 이중섭에게 처음으로 절을 해본 것이다.
이허중은 내놓고 ‘이중섭이 내 스승이요’ 할 수는 없지만, 정말로 이중섭을 평생의 스승으로 받들고 싶었다.
이중섭의 유골함이 묻히고, 이중섭의 친구들이 삽을 잡아 흙을 떠 던지는 걸 보면서 그는 맹세했다. 이중섭이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마저 그리겠다고.
* 주인공 이허중이 이 묘소에 들러 생각하는 부분
- 저는 주말만 빼고 이중섭 선생님 체취를 찾아다니지요. 계시던 병원에도 다시 들러보고, 살던 집에도 가보지요. 더러 망우리 공동묘지도 가보고요. 묘지 번호가 103535인데 찾기가 힘들어 제가 적송 한 그루를 심어두었어요.”
“무덤 번호 외우는 사람은 첨 보네.”
”망우리 공동묘지잖아요. 번호 모르면 찾기 힘들어요. 다행히 외우기 쉬운 번호잖아요. 하여튼 선생님 무덤 마당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제 귀에 익은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눈물이 저절로 나요. 이번에도 부산항에서 하역질을 하다 보니까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애쓰던 선생님 마음이 진짜로 느껴져요. 범일동 판자촌도 가봤는데 거기서 어떻게 사셨을까 처참한 그림이 그려지더라니까요. 저 역시 자식 먹여 살리려고 일하다 보니까 더욱 실감이 나는 거지요.”
- 눈이 녹으면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이중섭의 묘소를 찾아가, 잔디밭에 가부좌를 틀어 앉고는 그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돌리곤 했다.
사실 이 무덤은 이중섭의 몸이 온전히 묻혀 있는 곳은 아니다. 화장한 뼛가루 중 절반은 일본에 있는 부인에게 가고 나머지 절반만 망우리에 묻혀 있다. 그래도 이허중은 그곳에 이중섭의 영혼이 머문다고 믿었다.
그는 생전의 이중섭이 그랬던 것처럼 깡소주를 입안 가득 머금으며 미술에 대해 생각하고, 그의 인생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소금같이 쓰디쓴 인생이리라. 이중섭이 태어난 1916년부터 적십자병원에서 아무도 임종하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쓸쓸히 죽어간 1956년까지 그가 걸어간 길을, 걸음마다 피와 눈물이 괴어 있을 그 길을, 무덤 앞에 앉아 머릿속으로 복기해보았다. 묻기고 하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이중섭의 인생을 복기해본 게 벌써 여러 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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