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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반도지 관람정

존덕정을 지나면 한반도 모양을 한 반도지에 관람정이 있다. 관람정은 창덕궁의 후원에서 가장 잘 정돈된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관람정이나 반도지에 관한 기록은 1903년 이전에는 없었다고 하여 그 이후에나 생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람정’의 뜻대로 이곳에서 보여지는 연못의 모습은 아름답다. 관람정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선자정(扇子亭), 바로 부채꼴 모양이다. 반도지 쪽으로 기둥이 4개가 있고, 현관 쪽으로 기둥이 2개 있어 부채를 쫙 편 모양이다. 이러한 형태는 관람정이 연못에 떠있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지붕은 홑처마에 단층으로 우진각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현판도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형태이다. 반도지를 거꾸로 된 한반도라고 하지만, 임금의 동선인 존덕정에서 바라보면 바로된 ..

[스크랩] 칼날 위에 선 그대, 두렵지 아니한가?

오늘 25회 할미성대동제 중 작두타는 장면을 구경했다. 날선 작두칼이 햇빛을 받아 날카로운 흰색을 뿜어낸다. 바라보기도 두렵다. 그런데 그 작두칼을 밟아오르겠다는 박수가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춘다. 그를 격려하는 무당들도 함께 춤고, 여러 무당들이 작두타는 길에 도열해 그를 맞이..

[스크랩] 일왕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이유

<日정계원로들 “日王 야스쿠니 참배해야"> 이런데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일왕이 존경스럽다. 이른바 도미타 메모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됐다. 그 이후로 나는 참배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마음이다."고 했단다.실제로 일왕은1975년 11월까지는 야스쿠니 신사를..

창덕궁 존덕정

부용지를 지나면 애련지가 보인다. ‘애련지(愛蓮池)’는 연꽃을 좋아하던 숙종이 자주 찾은 연못이다. 조선시대 연꽃은 더러움에도 오염되지 않는 군자의 덕을 나타내 선비들이 특히 좋아하던 꽃이다. 애련지에는 존덕정(尊德亭)이 있다. 학문을 숭상한 임금인 정조는 존덕정은 자주 들렀다고 한다. 존덕정은 겹지붕에, 겹기둥으로 만들어져 있다. 즉 본 건물을 세우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붕이 두 개로 되어있다. 바깥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서 이채롭다. (사진에서 보면 안 기둥은 한 개의 큰 기둥으로 되어있고 바깥 기둥은 가는 세 기둥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한옥에서 중첩된 지붕을 찾아 볼 수는 있다. 궁궐, 사찰, 그리고 불사의..

창덕궁 낙선재

최근 개봉된 영화 ‘덕혜옹주’, 역사적인 논쟁이 뜨겁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은 엄상궁을 만나게 된다. 엄상궁은 1897년 은(垠)을 생산한다. 원래 후궁의 아들이라 적손이 될 수 없었지만, 손이 귀한 조선왕조이다 보니 적손이라는 의미로 ‘영친왕(英親王)’이 된 것이다. 엄상궁도 왕자를 생산한 덕분에 정1품의 빈이 되었다. 영친왕이 11세 되던 1907년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게 되었다. 실의에 잠긴 고종을 위로한 이는 소주방 나인 출신의 복녕당 양씨, 1912년 5월 25일 회갑을 맞은 고종은 딸을 얻으니, 이가 곧 덕혜옹주이다. 고종의 덕혜에 대한 사랑은 한없었다. 5세 되던 해에는 준명당에 유치원을 세우고, 동년배 5-6명을 함께 공부하게 하였다. 그러나 고종..

창덕궁 대조전

임금의 정전이 인정전이고, 편전이 선정전이라면,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은 대조전이다. 대조전에서는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3년 여동안 순조의 양위를 받아 정치를 했던 효명세자(뒤에 익종으로 추존)가 태어나기도 하였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으나, 임진왜란과 그 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다. 1917년 또 화재를 당하여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고 그 목재들을 창덕궁으로 옮겨 새로 짓고, ‘대조전’으로 불리며 창덕궁의 내전 구실을 하고 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신축과 개축의 과정을 거치며 대조전 자체와 주변 건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조전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36칸의 큰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