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 706

추운 지방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를 찬물로 목욕시켰다

兒旣生矣當洗(아기생의당세) 아이 태어나면 마땅히 씻어야 할 터 盆中貯來淸水(분중저래청수) 동이에 맑은 물 담아 오거라 水雖冷兮兒莫啼(수수랭혜아막제) 물이 비록 차더라도 아이야 울지 말라 百病消除堅骨理(백병소제견골리) 온갖 병 없애고 뼈와 피부를 튼튼히 하려는 것이란다 北方苦寒又多風(북방고한우다풍) 북쪽 지방 너무 춥고 또 바람이 많아 耐寒耐風從今試(내한내풍종금시) 추위 바람 참는 것 나서부터 경험하게 하네 이는 조선 후기 문신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한시 ‘아기생(兒旣生)’으로 한시집 62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는 갓 태어난 아이의 배냇물을 씻어내는 모습을 그렸다. 함경도 지방 가운데 마천령 이북 지역인 북관(北關) 사람들이 매서운 추위와 차디찬 바람이 있는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식..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고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장군 시리즈인 '명량', '한산'에 이은 마지막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를 관람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죽으면서 '조선에서 철수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도쿠카와이에야스는 야망을 가지고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세력이 우리나라에서 약화된 세력으로 귀환하기를 바란다. 왜군은 이순신 장군의 남해안 장악으로 보급로가 끊기며 전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이에 코니시유키나와는 아리마하루노부를 명나라 수군대장 진린에게 보내 화친을 맺으려 하지만 거절당했다. 코니시유키나가는 뇌물을 진린에게 주어 조선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히데요리의 계승을 지켜주고자 한다. 뇌물을 받은 진린은 이순신 장군에게 종전과 함께 일본 왜군을 보내주자고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

경복궁 영추문

경복궁 서쪽문인 영추문(迎秋門)은 '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을 가진 문으로 '봄을 세우다'는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과 대비되는 문이다. 영추문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이나 중인들이 궁궐에 출입하기 위해 드나들던 문으로 서쪽 궐내각사에 근무하는 관리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경복궁이 중건된 고종 때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전차가 건설되면서 영추문 주변 석축을 없애면서 함께 철거되었다가 1975년 철근콘크리트로 현재 자리에 다시 지어졌다. 그동안 영추문은 폐쇄되었다가 2018년 12월 6일에 개방되었다. 영추문을 통해 집현전 학사들이 수정전으로 출퇴근했으며, 한글 창제에 기여했을 것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흠경각이 설치되어 백성들에게..

돈의문터

가는 방법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5분 정도 직진하면 정동 사거리가 나와요. 이곳이 옛날에 돈의문이 있었을 거라 추정되는 곳이에요. 돈의문은 한양 도성의 서쪽에 있던 대문이에요. 유교의 네 가지 덕목 중 ‘의’ 자를 따와 ‘의로움을 돈독히 하라.’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어요. 다른 사대문과 같은 시기에 세워졌지만 태종 때 폐쇄하고 서전문을 새로 지었어요. 그 후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새롭게 돈의문을 세웠어요. 그러나 1915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도로를 넓히면서 돈의문은 완전히 철거되어 버렸어요. 비록 사대문 중 유일하게 현재 모습이 남아 있지 않고 터만 있지만 돈의문 안쪽 일대 마을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조성하면서 돈의문의 역사를 알리고 있지요.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가..

살판나는 세상

살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재물이 많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거듭되어 살림이 좋아지는 판국” 또는 “기를 펴고 살아나갈 수 있는 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말의 유래는 유랑연예집단인 남사당패의 놀이에서 나왔다. 남사당의 땅재주 놀음 중에 '살판'이라고 있다. 즉 광대가 몸을 날려 넘는 땅재주로 ‘지예(地藝)’ 또는 ‘장기(場技)’라고도 하였다. 남사당패는 꼭두쇠를 중심으로 농악인 풍물, 대접돌리기인 버나, 줄타기인 어름, 가면극인 덧뵈기, 인형극 또는 꼭두각시 놀이인 덜미와 함께 땅재주인 살판 등 여섯 연희를 공연했다. 살판은 여섯 놀이 중 세 번째에 해당된다. '살판'은 어릿광대와 꾼이 재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땅재주를 부리는 놀이로 매우 격렬하고 흥겹기 때문에 살판을 놀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며 ..

흥인지문

가는 방법 동대문역 9번 출구로 나와 오른편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요. 보행섬에서 보았을 때 오른편으로 흥인지문이 보일 거예요. 흥인지문 쪽으로 한 번 더 횡단보도를 건너요.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은 한양 도성을 건설하면서 동서남북에 네 개의 대문, 사대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유교의 중심이 되는 네 가지 덕목인 ‘인의예지’에서 한 글자씩 따와 사대문의 이름을 지었지요. 동쪽에 있는 대문은 ‘인’ 자를 넣어 ‘어진 마음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흥인지문이라고 지었어요. 흥인지문은 다른 대문들과 다른 특징이 있어요. 우선 흥인지문만 네 글자로 되어 있어요.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한양의 동쪽 기운이 약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를 보완하고자 ‘갈 지(之)’ 자를 넣어 기운을 강하게 한 거지요. 흥인지문에만 성문을 둘..

올바른 역사교육

을사오적’(乙巳五賊) 중 한 사람인 매국노 이완용의 생가터를 알리는 비석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는 한 유치원 바로 앞에 들어서 논란이 일자 1주일 만에 철거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유치원 앞에는 이완용 생가터 비석이 서 있었는데, 주변에는 행정복지센터와 어린이집, 초등학교, 그리고 200여m 떨어진 곳에는 중학교도 있어 많은 학생들이 오가는 곳이다. ‘이완용 생가 터’라는 이름의 비석은 성남문화원이 지난 22일 250만 원을 들여 설치했다. 가로 75cm, 세로 112.5cm의 비석에는 모두 425자의 글자로 이완용의 친일 행적이 담겨 있다. "시류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빠르게 변신해 을사 5적이자 정미 7적, 경술 9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됐다"며 "매국적 행위로 독립운동가들의..

운현궁

가는 방법 안국역 4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왼편으로 운현궁 입구가 나와요. 운현궁은 흥선 대원군이 살던 집이에요. 이 집이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고종이 왕이 된 후부터예요. 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았던 집을 본궁이라고 하는데, 본궁 앞의 고개 이름인 ‘운현’을 따 운현궁이라 지었다고 해요. 운현궁은 고종이 즉위하고 한 달쯤 지나 궁중의 최고 어른이었던 신정 왕후의 명을 받아 새로 건물을 지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사랑채로 쓰였던 노안당이 보여요. 유교 경전인 가운데 ‘노인을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노자를 안지하며’라는 구절 에서 따와 이름을 지었지요. 흥선 대원군은 임오군란 때 청나라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와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해요. 노안당의 왼편에 있는 중문으로 ..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스럽다

민주, 원전 예산 모조리 잘랐다...1820억 삭감 단독 의결 (chosun.com) 민주, 원전 예산 모조리 잘랐다...1900억 삭감 단독 의결 민주, 원전 예산 모조리 잘랐다...1900억 삭감 단독 의결 산자중기위 전체회의에서 단독 의결 文정부 추진한 SMR 예산도 전액 삭감 www.chosun.com [한삼희의 환경칼럼] 아직도 이 나라는 ‘文 유령 정부’ 휘하인가 (chosun.com) [한삼희의 환경칼럼] 아직도 이 나라는 ‘文 유령 정부’ 휘하인가 한삼희의 환경칼럼 아직도 이 나라는 文 유령 정부 휘하인가 태양광도 원자력도 핵변환의 자연 에너지 거대집중인 것도 마찬가지 에너지에 좌파, 우파 없는데 민주당이 잘라낸 원전 예산 태양 www.chosun.com [로컬 프리즘] 누구를 위한 원전 ..

경희궁

광화문역 7번 출구로 나와 뒤쪽을 바라본 다음 오른쪽으로 꺾어 큰길을 따라 직진해요. 10분가량 걸으면 오른편으로 경희궁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어요. 경희궁은 경복궁ㆍ창덕궁ㆍ창경궁ㆍ덕수궁과 함께 조선 시대 5대 궁궐로 꼽히지만, 다른 궁궐들에 비해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어요. 다른 궁궐들과 달리 복원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경희궁은 광해군 때의 이궁으로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어요. 임진왜란 때 모든 궁궐이 불타 버렸는데, 광해군은 그중 다시 지어진 창덕궁에는 머물기를 꺼려 했어요. 창덕궁에서 단종이 세조에 의해 폐왕이 되었고, 사화가 일어나 많은 선비들이 죽었어요.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죠. 그래서 광해군은 창덕궁 대신 조선 16대 왕인 인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