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22

오늘은 교육입국조서 발표

1896년 최초의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이 세워지며 영어, 산수, 지리 등 근대적인 학문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고종은 갑오개혁으로 발표한 홍범 14조에서 ‘새로운 학문의 학습을 위한 외국 유학’을 11조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을미개혁 이후 1895년 2월 2일에 고종이 조칙(詔勅)으로 발표한 교육에 관한 특별조서인 교육조서를 발표하였다. '국가의 부강은 지식의 개명에 달려 있으니,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라.'는 내용으로, 이때 교육의 3대 강령으로 덕육(德育)‧지육(智育)‧체육(體育)을 제시하였다. 교육의 3대 강령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사가 필요했기에 1895년 4월에 교사양성을 목적으로 한 <한성사범학교관제>를 공포해 사범학교를 설립하였다. 계속해서 <소학교령>과 <외국어학교관제..

오늘은 해군 첫 기동전단 창설

1960년에 한국함대 제1전단 예하 제11전대로 창설되었으며, 2010년 2월 1일 해군작전사령부 예하 제7기동전단으로 승격되어 세계 어디서나 독립작전이 가능하도록 꾸려진 최초의 해군부대이다. 이전까지 대한민국 해군은 중소형 함정 위주로 연안작전에 한정된 해역함대로 먼 바다에서의 작전에는 한계가 있엇다. 기동전단에는 한국의 첫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급(DDG)함과 4500톤급 충무공이순신급(DDH-II) 구축함인 대조영함, 왕건함, 강감찬함, 최영함, 이순신함으로 구성되며, 필요할 때는 군수지원함(AOE)인 독도함이나 잠수함, 기동군수지원함, 초계기 등도 합류된다. 해상 기동작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기동전단은 원유와 수출입 화물이 오가는 해상교통로 보호, 대북대비태세 유지, 독도와 이어도‧배타적 경제수..

오늘은 베델, 영자 신문 〈The Korea Daily News〉 창간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 이름 배설-裵說)은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 는 유언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베델이 대한민국의 독립과 언론 자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베델은 1904년 3월 10일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에 와서 일본의 무자비한 조선 침략을 비판하면서, 코웬・양기탁 등과 1904년 7월 18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베델을 발행인으로 한 것은 당시 일본인 검열관의 사전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는 일제의 무자비한 조선 침략에 대해 강력한 조선인의 저항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영자 신문 〈The ..

오늘은 피의 일요일

1905년 1월 22일 일요일 아침. 이날도 페테르스부르크는 흰눈에 덮여 있었다. 그러나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고 햇빛이 흰눈 위로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행진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은 먼저 정해진 장소에서 집회를 출정식을 가진 뒤 목숨을 건 행진임을 거듭 다짐하였다. 네바 지구는 1만여 명의 군중이 9시 반에 출발하여 10시경에 슈릿셀 소방서 앞에 도착했다. 짜르의 기병대가 벌써부터 행진하는 노동자 대열을 덮치기 시작하였다. 그곳의 저지선을 지키고 있던 카자크 기병대장 카메네프 대령은 해산을 명령하며 공포 3발을 쏘았다. 그러나 시위대는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길을 터라, 우리는 짜르를 도우러 가는 길이다.” 그렇게 행렬이 앞으로 조금 나아간 순간이었다. 카자크 기병이 칼을 ..

오늘은 진보당 사건의 조봉암 간첩 혐의 무죄 선고

2011년 1월 20일, 조봉암 간첩 혐의 재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왔다. 그런데 치안국에서 조봉암을 '공산주의자'라고 발표한 날은 1958년 1월 20일이기에 어찌 역사가 이럴 수가... 조봉암은 일제식민지 시기에 소련에 가서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 대학을 2년 수료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 조직중앙위원장을, 그리고 고려공산청년회의 간부가 되었다. 이후 소련, 중국, 만주 등에서 독립운동과 공산주의에 관한 일을 하다가 1932년 9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복역하였다. 해방이 되어 조선공산당, 건국준비위원회 인천부지부, 민족주의 민주전선 인천부지부 등에서 활동하다가 1946년 5월 박헌영과의 갈등으로 반좌익으로 전향해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하였고 남북협상에 ..

지금도 거란족이

고려거란전쟁이 한국방송에서 정통사극으로 방영되고 있다. 요즈음은 사극이 퓨전이라 감동을 주기에 부족하지만, 정통사극이라 재미와 감동은 배가 되는 듯 하다. 12세기 이후 거란족은 몽골족과 위구르족에 편입되었지만, 지금도 자취가 남아 있다. 홍콩의 영국계 항공사인 ‘캐세이 퍼시픽 항공’에서 '캐세이(Cathay)'는 중국을 가리키는 옛날 영어식 표현으로 거란족을 뜻한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지칭하는 '키타이(Китай, Kitay)'도 거란족을 가리킨다. 이처럼 유럽과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나타내는 국명으로 영향을 미친 거란족은 농경과 유목 생활을 하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의하여 정복되어 고구려 백성으로 살면서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돌궐·..

오늘은 카사블랑카 회담 시작

우리가 제2차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전쟁 국면, 그리고 전후처리를 위한 회담으로 1943년 11월 우리나라의 독립을 최초로 문서로 약조했던 카이로 회담, 그리고 한반도에서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담당한다는 1945년의 얄탸 회담, 카이로 회담을 재확인한 7월의 포츠담 회담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한 전쟁으로 바뀌게 된 계기를 만든 회담이 있었다. 바로 카사블랑카회담이다. 1943년 1월 14일, 루스벨트와 처칠, 자유 프랑스 장군 샤를 드골 및 앙리 지로가 프랑스령 모르코 카사블랑카의 앙파호텔에서 만나 11일간 제2차 세계대전의 국면을 논의하는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연합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축국의 무조건 항복을 해야 끝맺음 ..

오늘은 권율 장군이 독산성에서 일본군 격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 권율은 전라도 순찰사 이광이 전라·경상·충청 3도의 병력으로 조직한 남도근왕군에 중위장이 되었다. 8만 명의 남도근왕군은 1592년 7월 11일(음력 6월 3일), 오산의 독산성을 거쳐 안산과 금천을 향해 북진 하던 중 수원과 용인 방면의 남도근왕군이 7월 12일부터 7월 14일까지 광교산 일대에서 벌어진 용인전투에서 패하며 전라도로 후퇴하였다. 권율은 전라도에 머물며 도절제사가 되어 8월 13일, 14일에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일본군 제6번대와 대둔산 배티재에서 맞붙어 호남 진격을 막아냈다. 권율은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가 되어 그해 12월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1만에 이르는 호남의 병력을 이끌고최원, 김천일의 부대와 함께 오산 독산성에 주둔하며 서울탈환의 기회를 ..

오늘은 중국에서 태평천국운동 발생

아편전쟁의 패배로 청나라에 대한 한족의 반발(멸만흥한:滅滿興漢)과 배상금을 백성들로부터 강제로 거두는 것에 대한 반발로 태평천국운동이 일어났다(1850∼1864). 홍수전은 1847년 태평천국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적 조직인 배상제회(拜上帝會)를 광동성 계평에서 창설했다. 처음에는 신도가 적었지만, 어린 시절 함께 공부했던 풍운산의 활약으로 약 3천 명의 신도를 모으고 홍수전을 지도자로 삼았다. 신도는 주로 가난한 농민, 광산노동자, 객가 등의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배상제회의 세력이 확대되자 정부와 지주들의 탄압을 받아 풍운산 등이 체포되자 홍수전은 종교활동에서 정치혁명을 꾀하게 되었다. 군사조직인 단영을 조직해 남녀를 구분한 남영과 여영을 분리해 훈련을 하면서 계평현 금전촌에 집결했다. 185..

오늘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발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4개조의 전후처리 원칙을 밝혔다. 윌슨은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소위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였다. 윌슨의 주장은 1차 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식민지를 독립시키면서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패전국의 식민지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1차 대전의 승전국의 식민지는 해당 사항이 없으며, 패전국이나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던 일부 약소민족에게만 적용되었다. 즉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에서 민족자결주의와 관련된 대부분의 조항은 실제로는 발칸반도 및 동유럽의 패전국 영토에 귀속되어 있던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