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93

11월 7일 오늘의 역사, 김도현 의병장 순절

우리가 절명시하면 황현 선생을 생각한다.여기 절명시를 남긴 또 한분이 계시니 영남지방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도현 선생이다. 한말 대표적인 의병장 가운데 한 사람인 김도현 선생은 1852년 경북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 마을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교적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였다. 호는 벽산이다.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나라가 혼란스러울 것에 대비해 밤낮으로 군사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한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점고회(點考會)라는 일종의 군사훈련을 시작했다.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의 재산으로 상청리 마을의 뒷산인 검산(劒山, 혹은 검각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둘레가 500m 남짓의 산성을 일가친척 및 소작인들과 쌓았다.​검산성은 지형을 활용하였다. 동쪽으로 하천이 흘러 해자로,..

11월 5일 오늘의 역사, 독립운동가 박시창 선생

독립운동가 박시창 선생(1903.11.5 ~ 1986.6.7)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요, 중국군 장교 출신의 군인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아들이다. 생부는 박은식 선생의 6촌 동생인 박해겸이며, 2세 때인 1905년 딸만 세 명을 둔 박은식에게 입양되어 황주에서 성장하였다. 박은식 선생이 서울 오성학교를 세우자 서울로 올라와 1916년에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나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부친 박은식 선생 등이 사민보>』를 발행하자 이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박시창 선생은 독립운동가 최중호의 딸인 최윤신과 혼인해 국가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을 역임한 박유철을 낳았다.박유철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양기탁 선생의 손녀 ..

11월 3일 오늘의 역사, 박정희 전대통령 국장(國葬)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5~9대 대통령)의 장례식은 정부 수립 이후 엄수된 유일한 국장이다.서거 소식이 전해진 그날부터 9일장으로 진행된 국장 전날까지 청와대를 비롯한 전국의 분향소 1700개소에서는 1,700여 만 명의 국민들이 분향하며 추모하였다.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백두진 국회의장과 이영섭 대법원장이 부위원장을 맡아 미국 밴스 국무장관 등 해외 조문 사절도 받았다. 박 전 대통령 영결식은 11월 3일 오전 9시 중앙청 광장에서 엄수됐고, 세종로∼서울역∼동작동 국립묘지 구간에서 진행된 운구의식은 200여만 명의 시민이 연도에 나와 지켜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유해도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됐다.자유중국(타이완)과 태국 ..

11월 2일 오늘의 역사,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

북한 김일성은 1960년대 후반이 되면서 대한민국에 서서히 밀리는데 불안을 느끼며 남북의 긴장을 이용해 공산권 국가의 원조를 받으려고 무장공비침투를 시도하였다. 남북긴장을 노린 것 중의 하나가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군 소속 120명이 침투한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다. 무장공비 침투 및 도주는 1차(30명)이 울진 나곡4리 --> 태백산-->영월로, 2차(30명)는 울진 나곡 6리-->매봉산-->대관령으로, 3차(60명)는 삼척 월천2리-->오대산-->제방산으로 향했다.120명의 무장공비가 침투해 사살 107명, 생포 4명, 자수 3명, 도주 6명이고, 우리 피해는 군인과 경찰 전사 34명, 부상 50명이고 민간인이 31명 피살되었다..

박은식 선생 서거

조선 말기,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다. 많은 역사책과 위인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황해도 황주군 남면에서 1859년 9월 30일에 태어난 박은식은 열 살 무렵부터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특히 주자학을 연구하는 데 힘써 일찍부터 학자로서 이름을 날렸다.그는 일본의 침략이 날로 강화되자,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다가독립협회가 해산되자 장지연, 남궁 억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만들어 일제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백성들을 깨우쳤다.의 주필로서 많은 논설을 써서 국권회복과 애국계몽운동을 벌여나갔다. 한편 유교 개혁을 주장하고, 유교계를 친일파의 소굴로 만들려는 일제의 공작을 막기 위해 나섰다.결국 나라를 빼앗기자, 박은식은 1911년 중국 만주로 건너가 국사 연구를 통해 구국 독립..

제9차 대한민국 헌법 개정을 위해 찬반 직접투표 실시

제9차 대한민국 헌법 개정을 위해 찬반 직접투표 실시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결과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던 노태우는 6월 29일에 6·29 선언을 발표하여,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평화적인 정권 이양, 정치범의 사면과 복권, 언론의 자유 보장 등을 약속했다.1987년 9월 18일에 여야 공동으로 헌법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고, 9월 21일 제9차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이공고되었다.10월 12일 국회에서 찬성 254표, 반대 4표로 통과되어 10월 27일 국민들의 찬반 직접투표가 실시되었다.투표 결과 투표율 78.2%, 찬성율 93.1%로 확정되었고 10월 29일 공포되었으며 부칙에 따라 1988년 2월 25일에발효되었다.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먼저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혁명의..

10월26일 오늘의 역사, 청산리에서 일본군 격파

10월26일은 역사적인 사건이 많다.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께서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를 사살하였고,1979년에는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전대통령이 시해되었다.혹자들은 김재규를 민주화의 영웅인양 추켜세우는데, 전혀 아니다.김재규는 부마사태에 대한 질책을 받고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시해를 한 것이다.그는 자신이 가진 권총에 탄환이 몇 발 들었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전혀 계획한 것이 아닌 즉홍적인 것이기에 자신의 권총에 장전된 탄환의 숫자도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너무 김재규를 추앙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그리고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이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날이다.김좌진장군은 뛰어난 지략으로 독립군을 이끌며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독립 전쟁 역사상 가장 큰 승..

10월24일 오늘의 역사, 유엔데이

10월 24일은 국제연합일이다. 1945년 10월 24일 국제연합(UN)이 창설된 것을 기념하는 경축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부터 1975년까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나, 공휴일이 10월에 집중되어있어 1976년에 동 규정의 개정으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본인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재학 중일 때 10월은 공휴일이 많아 등교 하지않아 행복했지만,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와야 하기에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지금은 추억으로 되새기면서 부모님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국제연합일은 유엔의 날 또는 유엔데이로 불리웠다.대한민국은 유엔연합군의 도움으로 북한 김일성의 남침을 막았기에 많은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UN(United Na..

10월24일 오늘의 역사, 베스트팔렌조약 체결

베스트팔렌 조약은 1648년에 구교와 신교 간의 30년 전쟁을 끝마치기 위해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에서 각각 체결되어 프랑스어로 조문이 쓰인 평화조약이다.30년 전쟁은 최초의 국제 전쟁이고, 베스트팔렌 조약은 국제법의 출발점이라 하겠다.현재 독일 지역에 있던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종교개혁으로 루터파를 인정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후에 루터파만 신앙의 자유를 얻은데 대해 칼뱅파 신교도들의 불만이 커졌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보헤미아 지방에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신교도를 탄압하자 1618년 신교의 제후와 신도들이 황제의 섭정관을 성 창밖으로 던져버리며(이를 '프라하 사건'이라 함) 저항을 하면서 30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나자 유럽 국가들은 신앙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에스파냐는 카..

10울 20일 오늘의 역사, 평양수복작전

미국 1군단장인 프랭크 밀번 소장이 명령을 내렸다."미국 1기병사단은 개성-서흥-사리원-평양 방향으로, 미국 24사단은 고랑포-시변리-수안-평양 방면으로, 한국군 1사단은 개성-해주-안악 방향으로 진격하라"이에 한국군 1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북한의 수도인 평양을 먼저 점령하는데 한국군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밀번 미 제1군단장을 만나 “저의 고향이 바로 평양입니다. 그리고 적국의 수도를 점령하는데 당연히 한국군이 해야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지만, 밀번 소장은"한국군은 전차와 자동차 등이 없어 기동력이 떨어지므로 미국군과 공격 속도를 맞추기가 어울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라며 반대했다. 이에 백선엽 준장은"우리 장병들은 주야로 행군할 투지가 있고, 평양은 내 고향이라 지리를 잘 알기에 전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