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23

오늘은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1804년 12월 2일, 35세의 프랑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여 나폴레옹 1세가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국왕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공화정으로 전환된 지 불과 10년 만의 일이었다. 자신이 직접 황제 관을 쓰는 바람에 참석한 교황 피오 7세는 다만 기도와 포옹만을 할 수밖에 없어 교황의 권위가 무시되기도 하였다. 대관식으로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의 교향곡을 바치려고 작곡하다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에 교향곡의 제목을 ‘영웅’으로 바꿔 버렸다. 원래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출신의 하급 귀족으로 시작하여 1785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파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육군 포병..

오늘은 중국군,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 진주

티베트는 중국의 서남쪽에 위치해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등과 국경을 접하고, 면적은 122만㎢로 중국의 1/8에 해당된다. 중국은 티베트가 다른 나라와의 충돌을 완화시키는 완충 역할과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1950년 10월 11일 중국은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300만 티베트 인민을 해방시키고, 중국의 서부 변경에 대한 방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의 진군을 지시했다’라고 발표한 후 2개월도 안된 1950년 12월 1일 중국군 2만여 명이 티베트의 수도 라사를 점령했다. 점령군으로 토지와 식량을 요구하며, 이에 저항하는 티베트 각료들은 파면시켰다. 1951년 티베트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체결한 ‘십칠조 협의’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에 합병하는 대신 자치권을 인정하고 나서..

오늘은 '수출의 날' 제정

정부는 수출산업의 발전을 위해 1973년에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지정했다. 수출의 날은 1987년에 ‘무역의 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기록할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1차 상품과 가발 등 경공업 제품이었다. 1970년대 들어 섬유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경공업 제품과 전자, 철강 제품의 수출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1977년 계획했던 목표보다 앞당겨 세계에서 스무 번째로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주요 수출품목이 경공업 제품에서 자동차 등 중화학공업 제품으로 점차 바뀌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중화학공업정책이 무모하다고 비판했지만,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으며, 경제성장이 고도화되는 기반과 복지국가로 변화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은 남극조약 가입

1986년 오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남극 조약은 미국 대통령 D.D.아이젠하워의 제안으로 1959년 12월 조약을 체결하고, 61년 6월 발효됐다. 1957~1958년의 국제지구관측의 해를 맞아 남극에서 활동 중인 12개 나라를 미국이 초청한 회의에서 조약이 논의됐다. 조약의 주된 내용은 △남극 60도 이남의 비군사화 △과학적 조사 연구의 자유 △국제 협력이란 3원칙에 따라 군사기지 설치, 군사기동훈련, 핵실험금지, 방사능 페기물 처분 등을 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88년 2월 한국은 남극의 킹조지섬에 세종기지를 완공함으로써 세계에서 18번째로 과학기지를 건설한 국가가 됐고, 89년 10월 제9차 남극조약특별협의회에서 협의당사국으로 지명되어 극지학 연구와 자원문제 등..

오늘은 평화의 댐 건설 계획 발표

1986년 11월 26일, 37년 전 오늘 전두환 정권이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즈음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에 대한 요구와 전두환 정부에 대한 반독재 시위로 정국은 불안하였다. 불안한 정국을 타개할 목적으로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금강산댐을 건설해 무려 200억 톤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하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든다고 과장되게 발표했다. 1986년 10월 30일 건설부 장관이 "북한이 서울을 삽시간에 쓸어버릴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금강산 댐(임남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발표와 함께 화면에 비친 부간의 수공(水攻)에 의해 63 빌딩이 반쯤 잠기는 그래픽이 방영되었다. 이에 국민들이 북한규탄집회를 열었으며, 정부는 11월 26일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성금 모금도 국가적으..

오늘은 독도대첩이 있던 날

홍순칠 대장은 상이군인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인 상이군인들을 불러 모았다. 독도를 지키자는 홍대장의 뜻에 학도병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까지 의기투합하였다.​ 1953년 4월20일에 독도에 상륙해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가 결성되었는데, 보수는 없었으며 그들은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무인도이면서 바위섬 독도에 거주하는 것은 악조건이었다. 식량부터 거주 공간, 그리고 무장한 일본 순시선에 맞서기 위한 무기를 마련하기 위해 홍 대장은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해 300만 원을 받았다. 홍 대장은 이 돈으로 오징어를 매매해 500만 원으로 자금을 늘렸다. 그리고 '경북 병사구 사령부', '경찰국'에 요청해 무기를 지원받는 한편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무기를 구입했다. 부인은 군복을 수선하였다. 홍 대장을 포함한..

오늘은 일본의 강요로 을사늑약 체결

1905년 11월 17일, 대한 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대한 제국의 황제 고종은 이에 반대하였으며, 한기설과 민영기도 끝까지 반대하였다. 하지만 을사5적으로 불리는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의 활약으로 맺어졌다. 늑약을 맺을 당시에 명칭이 없었으나,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에 ‘한일협상조약’이라고 하였다. 을사년에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협약, 을사 5조약, 불평등조약이면서 일본의 강요에 의한 조약을 강조하기 위해 을사늑약이라고 부른다. 이 늑약은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대한제국의 존재를 없애버리면서 일본인 통감으로 하여금 대한제국을 통치하게 한 것으로 국권과 독립을 상실한 채 일본..

오늘은 해군 창설일

1945년 광복이 되자 손원일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에 힘썼다. 가산을 털어 '해사대'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80여 명의 젊은이를 모집해 어렵게 미 군정청의 허락을 받아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을 출범시켰다. 서울 관훈동 옛 표훈전에서 1945년 11월 11일 11시, ‘해안 방위를 위한 군사조직’인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육·해·공군 3군 중 가장 먼저 창설되었다. 같은 해 11월 13일 창설된 국방부보다 이틀 먼저 출범된 광복 후 최초의 공식적인 군 조직이었다. 일본군이 사용하다가 버리고 간 구구식(九九式) 소총과 미군으로부터 인수한 450t급 금강산함(PC-702)을 비롯한 소주정(작은 군함) 몇 척뿐이었지만, 교육과 훈련을 거듭해 자립의 터전과 기틀을 닦았다 '해군은 ..

오늘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날

동서 분단과 냉전체제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 9일 붕괴됐다. 동독내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많은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이탈이 계속되자 동독 스스로 분단의 벽을 허문 것이다. ​베를린 장벽은 지난 1961년 8월 에리히 호네커의 감독 아래 만들어져 동베를린 시민들이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막고자 하였다. 장벽은 폭 50m의 완충지대가 있는 66㎞의 이중철망과 55㎞의 단선철망, 25㎞의 콘크리트벽 등으로 만들어졌다. 베를린 장벽과 구조물들을 제거하는데 4백 명의 전문가가 달라붙어 3년이 걸렸으며, 1억 마르크의 돈이 들었다. 이곳에서 나온 흙과 시멘트는 무려 75만t이다. ​동서독의 화해 분위기는 이미 지난 196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 장벽을 일시 개방, 동베를린과 서..

오늘은 음력으로 판소리 대가 신재효 타계

판소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판소리는 고수의 장단에 맞춰 ‘창’과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인 ‘아니리’, 소리꾼이 소리의 극적인 전개를 돕기 위하여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내용에 따라서 몸짓과 손짓으로 나타내는 동작인 ‘발림’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연극‧노래‧무용 등이 합쳐진 종합 예술이라 하겠다. 판소리는 본래 열두 마당이었으나 오늘날 여섯 마당만 전하니, 곧 ㆍㆍㆍㆍ‧이다. 이렇게 정리한 사람이 바로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이다. 신재효는 고종 때의 음악가로, 전술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통일하여 6마당으로 체계를 세우는 등 한평생 판소리 연구에 힘을 쏟았다. 신재효는 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