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은 1960년대 후반이 되면서 대한민국에 서서히 밀리는데 불안을 느끼며 남북의 긴장을 이용해 공산권 국가의 원조를 받으려고 무장공비침투를 시도하였다. 남북긴장을 노린 것 중의 하나가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군 소속 120명이 침투한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다. 무장공비 침투 및 도주는 1차(30명)이 울진 나곡4리 --> 태백산-->영월로, 2차(30명)는 울진 나곡 6리-->매봉산-->대관령으로, 3차(60명)는 삼척 월천2리-->오대산-->제방산으로 향했다.
120명의 무장공비가 침투해 사살 107명, 생포 4명, 자수 3명, 도주 6명이고, 우리 피해는 군인과 경찰 전사 34명, 부상 50명이고 민간인이 31명 피살되었다.
당시 해안초소 분대장은 말년병장의 전역을 축하한다며 3명의 군인과 술집으로 가서 초소에는 2명 중 한 명은 자고, 한 명은 겁에 질려 도망치면서 간첩들이 상륙할 수 있었다. 후에 초소병이 분대장에게 보고하자, 박격포 몇 발을 발사한 후 적을 쫓아냈다고 허위보고를 했다고 한다.
간첩들은 군복과 경찰복, 양복, 작업복으로 위장한 채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마을 주민들을 모아 위조지폐와 북한 책자를 나누어 주면서 북한 발전상을 선전하고 남조선로동당에 가입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반발해 도주하려던 주민을 칼로 찌르고 돌로 쳐서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이들이 침투한 또 다른 목적은 폭탄으로 산업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또한 해병대 예비역이라는 이유로 양양군 장성읍에서 방문한 전병두씨를 대검으로 살해하고, 삼척군 하장면에서는 80세 노인, 52세 며느리, 15세 손자 등 일가 세 사람을 난자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 외에도 추수 중인 주민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자신들의 만행이 알려지는 것을 막고 당시에 우체국을 통한 연락이 많은 것을 알고 ‘통신차단’을 이유로 집배원을 살해하기도 했다. 경북 영주시에서는 민가에서 소를, 평창군에서는 소와 닭을, 사찰을 습격해 시주금과 식량을 약탈하고는 사찰에서 식사 등을 제공하는 보살을 단검으로 살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무장공비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울진군 북면 주민들이 기지를 발휘해 릴레이식으로 신고하였다. 이에 11월 4일 출동한 군대는 11월 16일까지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였고 간첩 31명을 사살하고 2명을 체포했다. 그리고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간첩 107명을 사살하고 생포 4명, 이형수 상위와 김익풍 중위, 조응택 중위가 자수를, 6명이 도주하였다. 생포된 4명은 고등운 중위, 정동춘 소위, 김광춘 소위, 김정명 소위로 총상을 입어 국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생명을 건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따듯한 겨레의 피로 살아났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으며, 이후 7명은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1968년은 연초에 일어난 1.21사태부터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북한에 대한 경계 강화와 간첩침투에 대한 대비, 그리고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제 3세계와의 외교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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