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시창 선생(1903.11.5 ~ 1986.6.7)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요, 중국군 장교 출신의 군인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아들이다.
생부는 박은식 선생의 6촌 동생인 박해겸이며, 2세 때인 1905년 딸만 세 명을 둔 박은식에게 입양되어 황주에서 성장하였다.
박은식 선생이 서울 오성학교를 세우자 서울로 올라와 1916년에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나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부친
박은식 선생 등이 <사민보>』를 발행하자 이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박시창 선생은 독립운동가 최중호의 딸인 최윤신과 혼인해 국가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을 역임한 박유철을 낳았다.
박유철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양기탁 선생의 손녀 양준자와 혼인했다.
1923년경 남경 중앙대학을 거쳐 1926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인 황포군관학교에 5기로 입학해 근대적인 군사교육을
받고 1927년에 졸업하였다.
학교에 재학 중 황포군관학교 동문인 진공목, 진갑수 등과 의열단 무창지부의 전신인 무한한인혁명청년회를 만들어
군사훈련과 독립운동의 선전사업을 펼치며 항일투쟁을 하였다.
중국군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인을 중국군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모집에 나시기도 하였다.
1941년에는 부인 최윤신이 김구 선생에게 부탁해 추천서를 받아 중국 최고의 군사교육기관인 중국 육군대학에 들어가
군사학을 공부한 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조선의용대와 조선광복군에서 참모로 활약하였다.
중국 육군대학 출신의 한국군 창설 참여자는 박시창 선생을 비롯해 김홍일, 최용덕이다.
독립 후 귀국하여 국군창설에 참여하였고, 6·25전쟁 중에 1군단 민사참모로 흥남철수 때 많은 민간인을 구출하였다.
이후 육군 8사단장, 제1군단 부군단장을 역임한 뒤 195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1976년 제5대 광복회 회장을 역임하고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며,
1986년 6월 7일 향년 83세로 별세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인터넷을 찾으시면 박시창 선생의 생년이 1900년 또는 1903년으로 나와있습니다. 박유철 선생께 문의하니
1903년이라고 말씀하시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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