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93

11월3일 오늘의 역사, 학생의 날

1919년 3·1운동 이후 10년만인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광주학생운동은 일제의 문화정치로 인한 한국인을 이간질해 3·1운동 이후 항일운동이 약화되었던 순간다시 한번 전국적인 항일운동일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광주학생운동은 일제의 차별적 교육 철폐, 민족 교육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면서 전국으로 확대되어 1930년 3월 말까지 약 5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이때 참가한 학교 194개, 학생 수 5만 4,000여 명이었으며, 퇴학 처분자 582명, 무기정학 2,330명, 피검자 1,642명으로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민족운동이었다.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지 30년 후, 당시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의 참여로 광주학생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

1월 22일 오늘의 역사, 김상옥 의사 순국

김상옥 의사는 1889년 1월 5일 한성부 동부 건덕방 어의동(現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김귀현의 아들로 일찍 아버지를 여위어 가난한 살림 속에 동대문감리교회와 야학을 통해 신문물과 사상을 접하였고, 1910년에는 경성영어학교를 다니며 국제정세와 서양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1912년에는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 영덕철물상회를 경영하면서 말총모자를 만들어 판매하였다. 17세부터 국산품장려운동, ‘대한광복단’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1920년에는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한훈, 김동순과 암살단을 조직하였다. 암살 계획이 사전 발각되어 1920년 10월 상하이로 가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1년 7월 국내로 잠입해 충청도..

1월 4일 오늘의 역사, 1.4 후퇴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한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이 압록강에 이르자 중공군은 유엔군과 국군이 압록강변까지 이르자 10월 2일 참전을 결정하고, 10월 19일 전쟁에 개입하였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4일 평양, 12월 24일 흥남에서 철수했고, 12월 말에는 삼십팔도선 이북을 중공군에게 빼앗겼다. 중공군은 여세를 몰아 남하하면서 1951년 1월 4일 서울을 함락하면서 임시 수도를 부산으로 정하고 서울을 철수하였다. 1951년 3월 18일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다시 수복했으며, 이후 전쟁은 삼팔선 부근에서 국지전으로 전개되었다.  1·4 후퇴 이후 부산은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12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가 되었다. 주택난으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로 조성한 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