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의사는 1889년 1월 5일 한성부 동부 건덕방 어의동(現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김귀현의 아들로 일찍 아버지를
여위어 가난한 살림 속에 동대문감리교회와 야학을 통해 신문물과 사상을 접하였고, 1910년에는 경성영어학교를 다니며 국제정세와 서양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1912년에는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 영덕철물상회를 경영하면서 말총모자를
만들어 판매하였다. 17세부터 국산품장려운동, ‘대한광복단’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1920년에는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한훈,
김동순과 암살단을 조직하였다. 암살 계획이 사전 발각되어 1920년 10월 상하이로 가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1년 7월 국내로 잠입해 충청도, 전라도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상하이로 돌아갔다.
1923년 1월 사이토오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려던 계획이 어렵자, 12일 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일제 공권력의 상징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후 경성부 삼판통(現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매부 고봉근의 집으로 몸을 숨겼다. 고봉근의 행랑방에 들어 있는 여자가 종로경찰서에 있는 친정오빠에게 밀고해 발각되었고, 우메다·이마세 두 경부 지휘 아래 20여 명의 무장경찰 과 총격전 속에서 종로경찰서 형사부장 다무라 등을 사살하고 포위망을 벗어나 피신하였다. 효제동에 독립운동가 이혜수의 집에 은신하던 중 발각돼 1923년 1월 22일 새벽 경기도경찰부장 우마노가 이끄는 일본 경찰 1천여 명이 김상옥 의사를 포위하였다.
김상옥 의사는 지붕과 담장을 넘나들며 일본 군경과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이며 구라다 경부를 비롯한 15명을 살상했지만, 총알이 다 떨어지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은 한발로 자결하였다. 김상옥 의사의 시신은 유족에게 인계되어
27일 오후 고양군 숭인면 이문동(現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6년에는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現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
정부는 김상옥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現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당시 종로경찰서가
있던 곳(現 종각역 8번 출구 앞 보도)에는 ‘김상옥 의거 터’ 표석이, 삼판통 고봉근의 집이 있던 곳(現 서울 용산구 후암로 28바길 5)에는 ‘김상옥 의사 항거 터’ 안내판이,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는 ‘김상옥 열사의 상’이, 효제초등학교에는
그의 어록을 새긴 비석이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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