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10울 20일 오늘의 역사, 평양수복작전

윤의사 2024. 10. 20. 10:50

미국 1군단장인 프랭크 밀번 소장이 명령을 내렸다.

"미국 1기병사단은 개성-서흥-사리원-평양 방향으로, 미국 24사단은 고랑포-시변리-수안-평양 방면으로, 한국군 1사단은 개성-해주-안악 방향으로 진격하라"

이에 한국군 1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북한의 수도인 평양을 먼저 점령하는데 한국군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밀번 미 제1군단장을 만나

“저의 고향이 바로 평양입니다. 그리고 적국의 수도를 점령하는데 당연히 한국군이 해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했지만, 밀번 소장은

"한국군은 전차와 자동차 등이 없어 기동력이 떨어지므로 미국군과 공격 속도를 맞추기가 어울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라며 반대했다. 이에 백선엽 준장은

"우리 장병들은 주야로 행군할 투지가 있고, 평양은 내 고향이라 지리를 잘 알기에 전차나 자동차보다도 빨리 갈 수 있다”

설득해 선봉 사단의 기회를 잡았다.

한국군 1사단은 10월 11일 고랑포를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평양을 향해 갔다. 하지만 밀번 소장의 걱정대로 기동력이 문제였다. 이에 백선엽 준장은 밀번 소장에게 전차 지원을 요청해 1개 중대 지원을 받으며 파죽지세로 평양을 향했다.10월 17일에는 평양에서 30km 떨어진 수안을 확보하고, 10월 19일 12시에는 평양시 선교리 로타리에 진출해 평양에 처음으로 도착하였다. 북한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10월 20일 마침내 평양을 점령하면서 6.25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즉 북한군의 후방을 위협하고 사기를 꺾으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한국군을 비롯한 유엔군으로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통일의 꿈은 멀어졌으며, 결국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지면서 지금까지 분단국으로 남아있다.

오늘 평양수복작전을 성공한 날을 맞아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사진:전쟁기념관)

제1사단이 평양에 제일 먼저 진입한 것을 인정받아 수여받은 평양 제1위 입성 기념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