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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백현동 출신 매국노 이완용

매국노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현재의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서 태어났다. 역사학자 이병도는 그의 묘가 전라북도 익산에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익산이라고도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묘는 파묘가 계속되자 후손들에 의해 화장이 되었다.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의 정치가이다. 한때 조선의 개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지만 을사조약 때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 이완용은 고종 때 벼슬길에 나서, 왕세자의 교육을 맡은 데 이어 서른여덟 살에 학부대신이 되었다. 그는 학부대신을 지내며, 최초로 근대적인 초등 교육을 의무화하고, 근대적인 교사 양성 사업을 펼쳐 우리 교육사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동양 여러 나라가 단결하여 서양의 침략에 맞서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동양 평화론’에 현혹되어 일본에..

[스크랩] 우리말 어원사전, 4번째 증보판을 냈습니다

오늘 책이 나와 서점으로 나간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4판이자 28쇄본입니다. 24년이 된 스테디셀러이자, 3판본이 나온 지 10년만에 낸 개정증보판입니다. 이 책은 제가 1995년 1월 25일에 1판 1쇄를 낸 것으로 그간 23주년이 되었습니다. 2003년에 2판, 2008년에 3판을 냈습니다. 우리말 어원 관..

조선 왕릉 정릉(靖陵)

정릉(靖陵) 선릉의 동쪽에는 정릉(靖陵)이 자리잡고 있다. 정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단릉(單陵)이다. 중종은 성종과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506년 박원종을 중심으로 일어난 중종반정으로 임금이 되었다. 연산군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위하여 노력하였다. 조광조를 등용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현량과와 향약을 실시하여 지방의 향촌 질서를 바로잡으려 하였다. 삼포왜란때 일본의 침입을 물리친 후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력을 강화하고, 인쇄술의 발달로 을 편찬하였다. 왕위에 오른 지 39년만인 1544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 서삼릉의 희릉에 있던 것을 풍수상 좋지않아 릉을 옮겨야 한다는 핑계로 문정왕후가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으나, 실은 본인이 그곳에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정왕후..

조선 왕릉 선릉2

정현왕후 릉 정현왕후 윤씨는 세조 8년(1462 ) 영원부원군 윤호와 연안부부인 전씨의 딸로 신창 관아에서 태어났다. 성종 4년(1473)에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가 되었다. 성종10년(1479)에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가 폐비가 되고, 성종 11년(1480)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친정아버지 윤호와 육촌인 윤필상과 협력하여 윤시를 폐비시켰다고도 전한다. 중종인 진성대군을 낳고, 1506년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일어난 중종반정 때 반정의 주도세력이 진성대군의 올립을 주장하자, 이를 승락하여 중종이 즉위하며 자순대비가 되었다가 중종 25년(1530)에 경복궁 정침에서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릉의 정자각에서 동쪽에 릉이 위치하여 동원이강릉이다. 선릉은 수난을 많이 겪었다. 선조26년(1593), 임진왜란 와..

조선 왕릉 선릉

서울 강남에 가면 공원같은 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선정릉이다. 선릉은 동원이강릉이다. 같은 영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정자각 왼쪽(서쪽)에는 성종의 릉이, 오른쪽(동족)에는 정현왕후의 릉이다. 성종은 의경세자(후에 덕종으로 추존됨)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예종이 1469년 승하하자 할머니인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13세에 경복궁에서 왕으로 즉위하였다. 성종은 원래 왕위 계승에는 상관이 없던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예종에게는 제안대군이, 성종에게는 친형인 월산대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인인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노력에 의해 조선 9대 임금으로 즉위하였기에 왕세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임금으로 즉위한 후에 제왕학 교육을 받았다. 13세에 임금이 된 후 친정을 하기 시작하는 ..

포은 정몽주

고려 후기의 정치가 고려가 망해갈 무렵, 안으로는 정치를 개혁해 질서를 바로잡는 한편, 밖으로는 외교에 힘써 나라간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 건국 세력에 맞서 고려를 지키려다 끝내 죽음을 당하였다. 저서로는 이 있고, ‘단심가’를 비롯한 많은 한시를 남겼다. 정몽주의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공이다. 정몽주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재주가 뛰어나 신동으로 불릴 정도였다. 공민왕 때 장원급제를 하며 벼슬길에 오른 뒤, 정치 개혁으로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힘썼다. 도 직접 싸움터에 나가 외침을 물리치기도 하였고, 외교에 힘써 아예 싸움을 막고 다른 나라와 평화를 유지하게도 하였다.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일들을 맡았지만, 정몽주는 마음이 넓고 시원스러운데다 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