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52

이승훈

이승훈은 한국 최초의 세례교인으로, 한국 천주교회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베드로이고 자는 자술(子述) 호는 만천(蔓川)이다. 아버지 이동욱은 남인 출신이며 참판을 지냈다. 외할아버지인 이용휴와 외삼촌 이가환의 영향으로 기호남인 중 권일신·정약종·정약전·이기경 등과 학문의 맥을 함께 했다. 성호좌파의 학맥을 이어받은 권철신의 영향으로 서양의 신학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영조 51년(1775) 정약용의 누이와 결혼했고, 정조 4(1780) 진사시에 합격,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벼슬에 뜻을 접고 학문에 힘썼다. 정조 7년(1783) 동지사의 서장관인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갈 때, 친척 이벽의 부탁을 받고 천주교 서적을 구하러 베이징 북천주당에 찾아갔다가 천주교 책과 교리를 보고 천주교 신자가..

신돌석장군

대한 제국 시기의 의병 대장 신돌석은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약하던 대표적인 평민 출신 의병장이다. ‘태백산 호랑이’ 혹은 ‘신장군’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신돌석의 뛰어난 활약은 일반 농민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고, 이후 평민 의병장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한 계기가 되었다. 신돌석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기상이 뛰어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큰 재목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신돌석은 어린 나이에 자신의 뜻을 펴고자 사방으로 동지와 스승을 찾아 다녔다. 점차 신돌석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무렵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다. 신돌석도 그동안 사귀어온 동지들을 모아..

윤봉길의사 탄신일

윤봉길 의사가 1908년 오늘 충남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윤봉길의사는 1932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국왕 생일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겨레의 독립혼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윤의사는 의거현장에서 체포되어 그 해 5월 25일 일제 군법회의에서 단심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1932년 12월 19일 오전7시 40분경 향년 25세로 순국하였다. 순국현장 인근 쓰레기 하치장 통로에 매장되었던 윤의사의 유해는 해방 후 1946년 6월 30일 조국에 반장되어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장졔스의 친필, '장사의 뜨거운 피! 불타는듯한! 의기 (義氣)가 천년의 세월이 지나 가도록 빛날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