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충무공 남이장군

윤의사 2020. 4. 17. 18:16

조선 세조 때의 장군으로, 젊은 나이에 반란군을 무찌르는 등 용맹을 널리 떨쳤다.

 

할머니가 태종의 4녀인 정선공주로

왕실과 친척관계이다.

남이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무과에 1등으로 합격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 이시애가 함경도 지역에서 여진족의 힘을 빌려 반란을 일으키자,

남이는 용맹을 떨치며 3개월 만에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이어 명나라와 힘을 합쳐 압록강 지역에 살던 여진족마저 물리친 공으로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하지만 세조가 죽고 예종이 임금이 되자, 한명회 같은 보수파들의 견제를 받았다.

하루는 대궐에서 숙직할 대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남이는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날 징조인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이 빌미가 되어 남이는 반역을 꾀한다는 반대파들의 모함을 받아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시호는 충무이다.

이시애 난을 평정한 후 쓴 시인 '북정가'에서는 남이장군의 기개가 보인다.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수음마무(豆滿江水飮馬無)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강원도 춘천과 가평군 사이를 흐르는 북한강 가운데 섬이 있다.

조선 세조 때 이름난 무관인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고 하여 '남이섬'이라 했다.

총면적은 약 0.453㎢이며, 둘레는 약 4km이다.

남이장군이 묻힌 장소는 정확하지 않으나,

그가 묻혔다는 전설이 담긴 돌무덤이 있고,

그곳의 돌을 함부로 가져가는 사람에게는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남이섬을 관리하던 관광회사에서 그 돌무더기에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고,

둘레를 잘 꾸며 지금의 묘를 만들었다.  


남이섬에 전하는 남이장군묘




'보고 배우는 인물사 > 인물여지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무공 김응하장군  (0) 2020.04.19
충무공 정충신  (0) 2020.04.18
김시민장군  (0) 2020.04.16
무의공 이순신  (0) 2020.04.15
표암 강세황  (0) 202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