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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은 윤봉길의사 의거일

윤의사 2013. 4. 28. 15:35

내일(4월 29일)은 윤봉길의사게서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대장 시라카와 등을 비롯한 고관 3명을 비롯한 수십 명을 사상시킨 의거일이다. 일본 수상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망언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새삼 크게 다가온다. 윤봉길의사는 총살형으로 순국하셨는데, 죽음 직전의 모습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아 역시 위인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블로그에서도 지난 해에 이를 다룬 적이 있다.

 

http://blog.daum.net/hannal/16518644

 

1931년 9월 만주사변 직후에 상해 임시정부는 임시정부 위상과 독립운동의 활성화를 기하기 위해

특별한 독립 운동 부대를 조직하고 김구가 이끌도록 하였다.

1931년 10월경 김구는 임시정부 산하에 비밀결사대원 80여 명을 모아

'실행을 중히 여기고 발언을 피하는 실천적인' 비밀조직으로 한인 애국단을 결성했다.

1932년 1월 8일 단원 이봉창이 도쿄 사쿠라다문에서 일본천황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의거를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한인애국단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경찰은 김구·조소앙의 체포에 힘을 기울였다.

그런 가운데 그해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군이 일왕의 생일 기념식을 거행할 때,

윤봉길은 물통 폭탄을 투척해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대장,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에 중상을 입히는 의거를 수행했다.

윤봉길의사의 의거는 중국 총통인 장졔스가 “중국인 4억 인구가 하지 못할 일을 한국인 한 사람이 해냈다”며 치하를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 운동과 한국인의 독립 투쟁에 적극 협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한인 애국단을 이끄는 김구를 체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인 애국단의 활동은 꺼져가는 독립 운동에 대한 한민족의 의지를 불태웠으며,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예산에 있는 윤봉길의사의 사당인 충의사

 

 

 

의거 전 윤봉길의사의 선서와 폭탄을 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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