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석은 한어역관이자 장화도조약 문정관으로 외교와 정치무대 현장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방대한 서화작품과 고미술 수장품을 아들 오세창에게 남겨 한국의 서화미술역사 정리의 토대를 닦았다. 유대치, 박규수와 함께 개화사상의 비조로서 김가진,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에게 개화사상을 전수하였다.은 '백 가지 근원이 되는 집', 은 '매화를 감상하는 집', 은 '거울 같이 맑은 볕이 드는 집'의 현판이다.1903년 김가진이 백운장 편액과 마찬가지로 '세독충정(世篤忠貞)'인장이 두인(頭印)으로 찍혀있다. 몽룡정은 백운건물 바로 옆 언덕에 지은 정자로 이곳에 오르면 장동 일대의 풍경이 조망되었다. 김가진의 시문집에 이곳을 읊은 시가 몇 수 있다.'독립문'의 현판을 김가진이 썼다고 하는 것은 서체와 서풍의 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