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622

오늘은 김영삼 전대통령이 태어난 날

제14대 김영삼 대통령(1927-2015)은 대한민국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25세에 당선되었으며, 민주진영의 지도자로 김대중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거제도 출생으로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 박정희 정부의 미국지지 철회를 주장하다가 의원직 제명파동으로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10.26사태로 이어졌다. 1983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시작한 단식을 23일동안 계속하였으며, 1986년에는 대통령 직선제 1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과 단일화에 실패하여 낙선한 후, 1990년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하여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93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금융실명제로 지하금융을 척결하고자 했으며, 지..

오늘은 윤봉길의사가 순국하신 날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전승 기념식을 열던 일제 침략자들에게 폭탄을 던져 벌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은 독립 의지를 다시 한 번 세상에 널리 알렸고, 중국과 더욱 힘을 합치는 계기가 되었다. 본명은 우의, 호는 매헌이다. 윤봉길은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여섯 살 때 이미 천자문을 익히고 한학을 배울 만큼 공부에 재주를 보였다. 그는 열한 살 때 덕산 보통학교에 들어갔으나, 그 이듬해 삼일 운동이 일어나자학교를 그만 두었다. 어린 마음에도 일본의 노예를 키우는 교육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뒤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혼자 일본어를 익혔고, 같은 잡지를 읽으며 신학문도 공부하였다. 윤봉길은 농촌의 현실과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기의 고향 마을부터 계몽하는 일에 앞장섰다...

오늘은 정권교체가 있었던 날

오늘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당선되어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날이다. 그는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 5선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6.7.8.13.14), 1997년 12월 18일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군부정권으로부터 납치와 가택연금, 투옥 등의 여러 탄압이 있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그의 대북정책은 교류를 기반으로 한 화해와 협력 등을 강조한 포용정책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 금강산 관광 등 성과를 이루었으나, 현대가 북한에 7대 대북 사업권 구입을 위해 4억5천만 달러를 송금한 것이 정상회담 대가도 포함되어있어 햇볕정책의 진정성과 투명성에 문제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경제적..

오늘은 제3공화국 탄생한 날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하는 제3공화국이 탄생하였다. 제3공화국은 대통령중심제로 유신헌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기간이다. 5.16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7개월 동안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새롭게 개정한 헌법을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하였다. 박정희를 비롯한 쿠테타 세력들은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4.19혁명과 5.16 군사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 라고 전문에 밝히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증대하고 국회의 권한을 줄였으며, 대통령은 4년 중임을 허용하였다. 대통령 중임제를 3선을 허용하는 6차 개헌이 있었으며, 10월 유신으로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제4공화국이 되었다. 박정희 정부에 대한 공과는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 되는..

오늘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 날

명나라와 왜의 교섭이 결렬되자, 왜는 조선에 군사를 보냈다. 이를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보다 조선을 왜가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비록 칠전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패배했지만, 배설이 12척의 배를 이끌고 도망한 것을 기반으로 이순신장군은 재기하였다. 명량에서 왜군을 물리쳐 왜의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그리고 풍신수길이 죽으며 철수를 지시하자, 왜는 하동부근으로 모여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한놈도 살려보낼 수 없었다. 이순신은 더욱 병사들을 격려했다. “한 놈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배 한 척도 놓치지 말라!” 이순신은 앞장서서 왜군 배를 따라나섰다. 이때 갑자기 이순신이 뒤로 쓰러졌다. 왜군의 총알이 이순신의 왼쪽 가슴에 명중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조카 완이 얼른 이순신..

오늘은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 생산한 날

북한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고 주방기기를 생산하는 ㈜리빙아트가 처음으로 공장을 준공하고 냄비세트 생산을 시작했다. 북한에 '초코파이'열풍을 불게하면서 바람을 일으키는가 했지만, 북한 지역에 공단이 있다보니 모든 것이 북한에 의해 움직이는 불합리가 발생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말했다. 변이를 주장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차이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환경이 변화하면서 동식물도 적응하게끔 변화하기 때문이다. 남북대화의 상징은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은 원래 위치부터 잘못되었다. 우리나라가 투자하고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의 씨앗을 뿌리고자 조성한 곳이 개성 공단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만을 생각한 졸속 작품이다. 우리가 투자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의지가 반영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박사가 세상을 떠난 날

사하로프(Sakharov, Andrei Dimitrievich)박사는 1921년 5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26세 때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1921.5.21~1989.12.14) 1948년 핵무기 개발 연구팀의 한 사람으로 수소폭탄 개발의 주역이 되었다. 수소폭탄을 개발한 공으로 32세 때에 소련과학아카데미 사상 최연소 정회원이 되었고, 스탈린상을 비롯해 소련 국민의 최고 명예라고 할 노동 훈장을 3개나 받았다. 미국에 개발하는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뒤쳐져 있던 소련으로서는 사하로프박사의 1953년 수소폭탄 개발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동등한 입장이 되어 '소련수소폭탄의 아버지'로 국가의 영웅이 되었다. 핵무기로 인한 피해에 대해 회의를 가지면서 도덕적 책임감을 느낀 사하로프박사는 소련이 ..

오늘은 고종이 왕위에 오른 날

조선시대 제26대 왕으로 쇄국 정책으로 닫혀 있던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화 정책을 펴나갔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세우지 못하고 외세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나라의 자주권이 흔들렸고,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비운을 맞았다. 어릴 때의 이름은 명복이며, 자는 성임 또는 명부이고, 호는 성헌이다.(1852-1919) 고종은 철종이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었다. 고종은 자라 어른이 되면서 흥선 대원군과 정치적으로 대립하였고, 최익현이 흥선 대원군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고종은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굳게 닫혔던 문호를 개방하여 서구 문화를 수입하였다. 그리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어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한..

오늘은 12.12쿠테타가 있었던 날

10월 유신으로 독재정치를 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김재규에게 죽음을 당하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지내는데, 1979년 12월12일 보안사령관 전두환, 제9사단장 노태우 등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면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것을 12.12사태라고 부른다. 전두환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시키기 위해 하극상이라는 동료 군인과 국민들에게 생각을 주지 않기 위해 정승화가 김재규로 부터 돈을 받아 10.26사건 수사에 비협조적이라고 왜곡시켰다. 전두환과 노태우에 동조하는 군인으로 국방부군수차관보 유학성, 제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제20사단장 박준병, 제1공수여단장 박희도, 제3공수여단장 최세창, 제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이 있었다. 12월12일 저녁 ..

오늘은 북한의 항공기 납치가 있던 날

요즈음 영화나 뉴스 기사를 보면 대한민국 군인이 잘못했다는 내용이 많다. 이런 기사를 보면 많이 안타깝다. 역사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시(?)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한민국 군인은 모두 속된 말로 '찌질이' 자체이다. 그리고 양민을 학살한 사람도 모두 대한민국 군인이다. 언젠가 본인이 자료를 조사차 월남전 참전 군인을 만났다. 그분의 말은 당시의 사정을 보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즉 옆에서 동료가 누군가의 총에 희생이 되면 전우들은 속된 말로 '눈이 뒤집힌다'고 한다. 오직 동료의 복수만을 생각하면서 이성을 잃는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계속된 교육에 의해 동료들 이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적으로 보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