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 707

아픈 역사의 흔적 ‘경복궁 건청궁’

3호선 가는 방법 : ‘경복궁역’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나와 국립고궁박물관을 왼편에 두고 직진해요. 박물관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 이정표가 나올 때까지 걸어요. 이정표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꺾은 다음 길을 따라 한참 걸어요. 그러다 보면 계단 위쪽 문이 보일 거예요. 그 문을 통과해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또 하나의 문이 나와요. 안쪽으로 들어가면 건청궁을 찾을 수 있어요. 1873년 고종은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립의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직접 자금을 마련하여 경복궁 내에 건청궁을 지었어요. 건청궁은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서재인 관문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고종은 건청궁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을 설치하여 환하게 불을 밝혔어요. 1895년 건청궁 곤녕합의 남쪽 ..

체신기념관

▷ 가는 방법 : 3호선 안국역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사거리가 나와요.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왼쪽으로 꺾어 길을 따라 쭉 걸어요. 그러면 오른편으로 한옥이 하나 나오는데, 그 건물이 체신 기념관이에요. 1972년에 개관한 체신 기념관은 우리나라 첫 우체국인 우정총국 건물을 새로이 단장한 곳으로 우편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1985년 천안에 우정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이곳에 있던 자료들이 넘어갔지만 건물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답니다. 바로 조선의 근대화를 시도한 갑신정변이 일어난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조선 시대 개화파 인사 중 한 명이었던 홍영식은 보빙사로서 선진 문물을 배우고자 미국에 다녀왔어요. 그때 조선의 개화를 위해서는 우편에 관한 행정과 통신 기술을 도..

민주당은 이런 말을 하면서 자유와 인권을 말할 수 있을까?

도종환 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6명의 의원이 중국의 지원으로 티베트를 갔다. 티베트에서 열린 ‘제5회 시짱관광문화국제엑스포’의 부대행사로 17일 열린 키노트 포럼에 참석해 축사까지 했다. 국내에서의 비난에 대해 시종일관 “정치와 무관한 관광·문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70년 전의 일이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티베트는 남으로는 인도와 네팔, 부탄과 북으로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칭하이성, 쓰촨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면적에 ‘세계의 용마루’로 불리는 고도 4000m의 고원에 철, 금강석, 마그네슘 등 70종이 넘는 지하자원이 매장된 보고이다. 중국은 인도와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티베트의 전성기 때는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토번국으..

누가 이렇게 가르치라 했는가?

오늘 조선일보 기사이다. 유명 역사강사 배모씨 “이승만, 반민특위 강제해산된 6월 6일 현충일 지정” 거짓 주장 (chosun.com) 유명 역사강사 배모씨 “이승만, 반민특위 강제해산된 6월 6일 현충일 지정” 거짓 주장 유명 역사강사 배모씨 이승만, 반민특위 강제해산된 6월 6일 현충일 지정 거짓 주장 www.chosun.com 반민특위와 현충일은 전혀 관계가 없다. 현충일은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과 관련이 깊다. 24절기 중 9번째 절기가 6월 5일 망종(芒種)이다.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芒)의 종자(種)인 보리를 수확하고 논에 모를 옮겨심는데 적당한 절기이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오” ,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등 농사 관련 속담이 많은 이유다. ..

망종

망종(芒種)은 절기상으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어 있어, 보통 음력 5월, 양력으로는 6월 6일 현충일 무렵이다. 망종의 속담 중에는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는 망종이요.” 이 있다. 망종은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정도로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장마철이 시작되기도 하여 비가 자주 내려 모내기에 적합하다. 요즈음 모내기는 이미 마칠 시기이다. 망종의 풍습으로는 ‘망종보기’와 ‘보리그스름’ 등이 있다. ‘망종보기’는 망종이 음력 4월이냐, 5월이냐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것이다. 즉 망종이 음력 4월이면 보리농사가 잘 되어 빨리 거둘 수 있으나, 5월이면 보리농사가 늦어 망종..

창경궁 문정전

▷가는 방법 : 혜화역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어요. 이곳에서 301번 버스를 타고 ‘창경궁, 서울 대학교 병원’에서 내려요. 조금만 걸으면 오른편으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이 나와요. 홍화문으로 들어가 직진하면 명정전이 나오고, 그 왼편으로 문정전이 있어요. ▷가는 방법 : 혜화역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어요. 이곳에서 301번 버스를 타고 ‘창경궁, 서울 대학교 병원’에서 내려요. 조금만 걸으면 오른편으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이 나와요. 홍화문으로 들어가 직진하면 명정전이 나오고, 그 왼편으로 문정전이 있어요. 창경궁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문정전이라는 건물을 볼 수 있어요. 문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어전 회의를 열며 정사를 돌보았던 곳이에..

신라시대에 벌써 시공 책임제가

남산신성은 선도산성과 명활산성을 양쪽에 끼고 궁궐 반월성을 지키던 산성이었다. 도성의 남쪽 금오산(金鰲山) 북쪽의 계곡과 산봉우리를 연결해 돌과 흙으로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울산과 경주 외동에 위치한 관문성이 경주의 1차 방어선이라면, 울산 방향에서 월성을 방어하기 위한 2차 방어를 위해 쌓은 성이다. 성을 쌓을 때 당시 새로 지은 산성이라고 해서 ‘남산신성’으로 불린다. 둘레 3.7㎞의 성인데 지금은 성벽 대부분이 무너진 상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남산신성은 진평왕(579~632) 13년(591)에 처음 축성했다. 신라본기 진평왕조를 보면 진평왕(眞平王) 13년(AD591) 7월에 남산성(南山城)을 쌓았는데 그 둘레가 2855보(步)이다. 라고 되어있고, 문무왕 때 창고를 지은 기록이..

연등회

조선 시대 정조가 세자시절 초파일 연등 행사에 쓴 시 天時四月樹如霞(천시사월수여하)/ 一夜燃燈幾萬家(일야연등기만가)/ 深院迢迢明竹葉(심원초초명죽엽)/ 高竿處處出蓮花(고간처처출연화)/ 山河照耀夕如晝(산하조요석여주)/ 歌鼓喧騰人似麻(가고훤등인사마)/ 始識太平多樂事(시식태평다락사)/ 漏聲不覺五更過(루성부각오경과) 시절이 사월인데 나무들이 노을처럼 붉구나 오늘 하룻밤 연등을 몇만 집에서 밝혀 놓았을까 깊숙한 이곳 정원 아득한데 대나무 잎사귀 밝혀주고 높다란 간지대 곳곳에 연꽃이 피어있구나 산하를 환하게 비추니 저녁인데 대낮 같고 노랫소리 북소리 시끌북적 사람들은 삼대처럼 많아라 비로소 태평 시대에 즐거움이 넘치는 행사임을 알겠노니 물시계 소리가 오경이 넘었음을 알지 못했네 내일이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의..

횡설수설(橫說竪說)

횡설수설(橫說竪說)은 불가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리킨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가리침을 펴실 때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비유와 관련 이야기를 끌어들여 조리있게 잘 설명한 것을 ‘횡설수설(橫說竪說)’이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였으며, ‘횡설수설(橫說竪說)’이 아닌 ‘횡설종설(橫說從說 )’이었다. 『장자 』 ‘서무귀’」 편을 보면 서무귀가 나오자, 여상이 그에게 물었다.(徐无鬼出 女商曰)/ “선생께서는 대체 무슨 말로 우리 임금을 설득하셨습니까?(先生獨何以說吾君乎)”/ 제가 임금님을 설득시키는 방법은 횡적으로는,(吾所以說吾君者)/ 시, 서, 예, 악을 사용하였고,(橫說之則以詩書禮樂)/ 종적으로는 주서의 금판편육도편을 사용하였을 뿐입니다.(從說之..

덕수궁 중명전

가는 방법: 시청역 시청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왼편으로 골목길이 하나 있어요. 조금 더 걸으면 덕수궁 돌담이 보일 거예요. 왼쪽으로 꺾은 다음 돌담을 따라 쭉 걸어요. 이후 원형 분수대 오른편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오른편으로 국립 정동 극장이 나올 때까지 계속 직진해요. 국립 정동 극장을 오른편에 끼고 안쪽 길로 들어가면 덕수궁 중명전 입구가 보일 거예요.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졌어요. 원래는 수옥헌이라는 이름을 가진 1층짜리 서양식 건물이었어요. 1904년 덕수궁에 불이 나자 고종은 덕수궁의 별채였던 중명전을 거처로 사용했어요. 이곳에서 외국 귀빈을 만나거나 연회를 열었다고 해요. 한편으로는 비운의 장소이기도 해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강제로 체결되었거든요. 이는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