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 213

백정기 의사

백정기의사는 1896년 1월 19일 전북 부안에서 아버지 백남일(白南一)과 어머니 파평윤씨 윤문옥(尹文玉) 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세에 독립에 대한 뜻을 품고 서울로 왔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와 항일만세운동을 이끌었다. 1920년 8월에 4명의 동지와 함께 인천에 있는 일본인 시설을 파괴할 계획이었다가 사전에 탄로되어 만주 봉천(지금 심양)으로 갔다. 중국에서 일본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1924년 일왕을 처단하기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실패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자유혁명자동맹을 결성하고 「흑색공포단(B.T.P)」으로 개명해 일본의 밀정을 처벌하거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 등 일본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1932년에는 상..

여성독립운동가 광복군 여성 1호 신정숙

최초의 여성 광복군이며 김구 선생의 개인 비서였던 신정숙 선생. 1910년 평북 의주에서 출생한 신정숙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가 가명을 사용하였기에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신정숙선생은 아버지와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언니 신봉조(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생사가 불명해짐)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남편 장현근과 결혼하였지만, 혼인 생활은 길지 않았다. 장현근 선생 또한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상해로 망명하여 애국청년단 활동을 하다 1932년 안창호 선생과 함게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장현근 선생은 가석방되어 다시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나섰다. 신정숙 선생도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중국유격대에 잡혀 포로가 되었다. 김구 선생의 도움으로 충칭에 온 신정숙 선생은 백범 선생의 비서가..

여성독립운동가

민영주, 안수산, 강주룡, 블리디보스토크의 자매 민영주는 1923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1940년 9월에 한국광복군 창설시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942년 1월 내무부 부원으로 충칭방송국에서 심리작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김구주석을 도왔으며, 1945년 4월 광복군 2지대에 편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민영주선생님 민영주선생님이 사용하던 서예도구 안수산은 1915년에 안창호선생과 독립운동가 이혜련의 딸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미군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로 근무하였다. 강주룡은 1901년 함경도 강계에서 출생하여 1931년 평양적색노동조합에 참여했다. 평양 2300명의 고무 직공들의 임금 삭감과 민족 차별에 항의하여 평원고무공장의 파업을 주도하였다. 당시 을밀대..

여성독립운동가 안중근의사의 모친 조마리아님

안중근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는 1862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안태훈과 결혼 후 3남 1녀를 모두 독립운동가로 길러냈다. 조마리아는 1907년 안중근이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자,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여 패물을 아낌없이 내놓아 아들을 후원하였다. 이또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사가 사형을 언도받자 조마리아는 깨끗한 죽음을 택하라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수의를 보냈다. 안중근의사의 사형 후 연해주로 이주했던 조마리아는 1920년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 이강, 김붕준 등과 이웃해 살면서 상해 독립운동 진영의 안주인이자 어머니 역할을 해 ‘여중군자’로 불렸다. 1920년대 연해주 대동공보 주필 이강 선생은 조마리아를 가리켜 ‘과연 범이 범을 낳았다’고 말할 만큼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1926년 안창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