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역사인물백과

최북

윤의사 2019. 6. 29. 21:22

영조와 정조 때의 화가인 최북은 시각 장애우였다.

최북 역시 후천적 장애우였다.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남공철의 금릉집,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실려 있다.

최북이 시각 장애를 갖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권력자 한 사람이 최북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였다.

최북은 가난한 사람이 요청하면 돈도 받지 않고 그려주지만,

거만하거나 부자라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에게는 바가지를 씌우거나 거절을 하였다.

이때 권력자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최북은

나는 아무 때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오.”

라며 거절하였다. 이에 권력자가

당신을 관에 고발하여 처벌하게 할 것이오.”

라고 협박하자, 최북은 필통에서 송곳을 꺼내 스스로 한 눈을 멀게 한 뒤

차라리 내 자신을 자해할망정 남에게 구속받지 않겠다

고 했다. 피를 흘리면서도 초연한 최북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껴

권력자는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을 갔다고 한다.

그 때부터 그는 항상 반안경을 쓰고 지냈다.

 

최북은 평소 우리나라 화가들이 중국 화가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우리나라의 산과 강이 중국과 다른데 어찌 중국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려야 하겠는가?”

라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진경산수(眞景山水)를 그리려 했다.

최북은 이익이 이끄는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함께 가기도 했으며,

신광하를 따라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가 중국에 갔을 때 고향을 그리는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독작(獨酌)

 

일편동주월(一片東州月)/ 응지고국명(應知故國明)

기년위객재(幾年爲客在)/ 가절매수생(佳節每愁生)

제설통림정(霽雪通林淨)/ (귀운출수횡歸雲出岫橫 )

춘풍관주록(春風官酒綠)/ 짐작임오정(斟酌任吾情)

 

한 조각 철원의 달이/ 아마 고향에도 밝게 비추겠지

나그네 생활 몇 년 이던가/ 좋은 계절이면 늘 시름 겹고나

눈 그치자 온 숲이 깨끗해지고/ 돌아가는 구름이 골짜기에 가로 걸렸네

봄바람에 술 익어 향기롭기에/ 내 마음 달래며 혼자 따른다

 

하지만 최북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자신이 운명을 안 듯이 이름인 북()을 파자(破字)하여

호를 칠칠(七七)로 하여 7*7=49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최북 미술관


산수화


산수화


괴석도, 괴석은 장수의 상징물이었다.


매하쌍치, 매화나무 아래 두 마리의 꿩이 그려져 있다.


-사진은 무주군청에서 가져왔다. 최북미술관은 무주군 무주읍 한풍루로 346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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