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역사인물백과

정철의 여자, 자미

윤의사 2019. 12. 8. 11:31

선조 14(1581) 전라도 관찰사로 정철이 부임하였다.

자미는 정철의 수청을 들어야 했지만 거절하였다.

정철은 이런 자미를 내보냈다.

자미가 우연하게 정철이 하는 말을 들었다.

기생도 사람이오. 얼굴을 보아하니 아니 피어나지도 않은 아이인 것 같소. 그런 아이를 내가 어찌... 그것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오.”

자미는 문밖에서 정철의 말을 들으며 감탄하였다.

자미는 정철의 마음 씀씀이에 감탄하여 수청을 들기로 하였다.

정철은 자미에게 학문과 시를 배울 것을 약조하고 자미의 청을 받아들였다.

자미는 자신에게 학문을 가르치면서 기생이 아닌 사람 대접을 해주는 정철을 존경하였다.

선조 15(1582) 9월에 정철은 도승지로 발령받아 자미와 만난 지 10개월 만에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정철은 자미와 이별하며 자신의 호인 송강(松江)’에서 ()’

자미가 너무 어여쁘니 ()’를 합쳐서 강아라고 지어주었다.

이어서 자미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위로하는 시를 지었다.

<자미화>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거리에 가득한 사람이 모두 네 고움을 사랑하네.

 

정철의 강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앞으로 강아가 어떻게 생활해야 되는 지를 담은 시였다.


정철의 묘는 처음에는 부모와 장남이 묻힌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송강마을에 있었지만,

우암 송시열의 권유로 후손에 의해 1665년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환희산 기슭으로 이장되었다.
원래 정철의 묘 가까이에 강아의 묘가 있다.

지금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송강마을에 강아의 묘가 처음에 있던 곳에 남아있다.

송강마을에는 송강 정철을 기리는 송강문학관이 있지만

평소에는 개관하지 않아 미리 연락을 해야만 할 것이다.

강아의 무덤 앞에는 199810월 건립된 묘비가 세워져 있다.

전면은 의기강아묘(義妓江娥墓)’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엔 두 사람에 관한 설명이 새겨져 있다.

 

영자미화(詠紫薇花)

 

일원춘색자미화(一園春色紫薇花)

재간가인승옥채(纔看佳人勝玉釵)

막향장안누상망(莫向長安樓上望)

만가쟁시연방화(滿街爭是戀芳華)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자미야!)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리라

그의 묘는 정철 후손들이 오백년을 이어 오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울 청운동에 있는 표지석


고양 송강문학관

  강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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