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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를 치료한 왕족 이헌길

윤의사 2023. 12. 24. 11:23

어느 날 한 부인이 와서 남편의 병세를 말하며 애원했다. 이헌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의 병은 너무 위중하오. 마지막으로 써 볼 약이 있긴 한데, 그대가 해낼 수 있을지...”

부인의 애원에도 처방을 알려주지 않았다. 부인은 죽어가는 남편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독약과 술을 사서 집으로 갔다. 남편의 고통을 줄이고 죽음을 맞게 하기위해 그릇에 독약을 술에 타서 마루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부인은 차마 남편에게 줄 수 없어, 문밖으로 나가 통곡했다. 다시 마루로 돌아오니 울다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릇이 비어 있었다. 남편이 물인 줄 알고 마셔버린 것이다. 부인은 다시 이헌길에게 달려가 남편이 독을 탄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허 참, 내가 알려 줄려고 한 처방이었는데 부인이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는데...이제 남편을 살아났소.”

부인이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의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이헌길의 일화 중 하나이다.

이헌길은 정종의 아들인 덕천군으로 왕족의 후손이었으나, 붕당정치로 인해 벼슬에 나설 수 없었다. 또한 너무 못생겨서 그를 한번 보면 알아볼 정도라고 했다. 특히 너무 말라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데다 코주부였으나 항상 웃음으로 사람을 대했다”(중앙일보,200449)고 한다. 이익의 제자인 이철환에게 수학해 실용적인 학문에 관심이 높았다. 이철환은 <두진 방>이라는 천연두 치료책을 청나라에서 구해와 이헌길에게 주었고, 책을 바탕으로 두진(痘疹, 천연두)의 처방을 혼자 공부했다.

혼자 공부한 천연두의 처방을 영조 51(1775) 봄에 이용하였다. 이때 이헌길은 부친상으로 3년 상중이었을 때였고, 서울로 볼일을 보러 왔다. 이때 천연두가 유행해 사람들이 주검을 옮기는 모습이 줄을 이었는데, 잠시 헤아려 보니 100명도 넘었다. 그는 생각했다.

천연두 치료법을 아는 내가 3년상의 예법으로 근신만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이헌길은 치료를 시작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다. 그중에는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3세 때 천연두에 걸린 정약용을 살렸으며, 이 후유증으로 눈썹이 세 개처럼 보일 정도로 종기가 있어 스스로 호를 삼미(三眉)라고 했다. 정약용(丁若鏞)은 그 보답으로 이헌길의 생애를 다룬 <몽수전>을 지었다. 이 책에서 그가 집을 나서서 다른 환자의 집에 가면 수많은 남녀가 앞뒤에서 옹호하였는데, 그 모여 가는 형상이 마치 벌떼가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그가 가는 곳에는 뿌연 먼지가 하늘을 가리는 바람에 사람들은 먼지만 보고도 그가 오는 것을 알았다.‘고 적고 있다.

이 당시 홍역을 마진이라고 부르며 작은 마마‘, 천연두는 무서워 큰 마마라 불렀다.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난 왕족으로 세종대왕의 막내 동생인 성녕대군과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가가 있다.

이헌길은 홍역이 12년마다 유행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특히 홍수가 나면 더 크게 유행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헌길은 사람들에게 홍역이 유행했을 때 치료법을 책으로 엮어 보급했다. 1759년에 편찬된 <마진방>이었다. ’마진이라고 한 것은 마()의 씨앗같은 두드러기(:)가 나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이헌길의 예상과 자신이 천연두에 걸렸던 경험과 이헌길의 <마진방>과 중국의 의서를 바탕으로 1800년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한 <마과회통>을 지었다.

이헌길은 왕족이었지만 백성들을 사랑했던 유의(儒醫)였다.

정약용의 <마과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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