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윤의사 2019. 12. 1. 11:36

박에스더의 본명은 김점동이다.

에스더는 1877316일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10세 되던 1886년 아펜젤러목사의 일을 도와주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이미 입학한 3명의 학생과 함께 공부한 에스더는 성경공부에 열중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녀의 집안은 교육열이 높은 집안으로, 언니는 정신여학교 교사이며,

동생은 세브란스 간호학교 제 1회 졸업생이었다.

이화학당에 다닐 때 영어실력이 뛰어나,

이화학당에 교사로 있던 의사 셔우드(Rosetta Sherwood)의 통역으로 활동했다.

셔우드가 동료 의사인 홀과 결혼하면서, 홀부인의 주선으로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 땅에 여자 혼자 보내는 것을 꺼리는 부모님의 권유로 함께 병원에서 일하던 박유산과 결혼하고 나서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현 존스홉킨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에스더는 남편 박유산의 성을 따라 박에스더가 되었다.
박유산은 에스더의 학비를 벌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픔도 잊으며 박에스더는 고생 끝에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여성 양의사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학을 공부하여 양의사가 된 서재필박사 이후 7년 만이다.

대한제국으로 돌아온 박에스더는 여성전용병원인 보구여관(동대문부인병원의 전신)에서 의사로 일했다.

보구여관에서 처음으로 개복(開腹) 수술을 하여 사람들이 귀신의 재주를 가졌다고 칭송하였다.

에스더가 진료하는 환자는 1년에 수 천 명에 달했다.

휴일도 없이 평양의 부인병원 및 진료소에서 수술 및 진료를 하고,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으로 가마를 타거나 당나귀를 타고 무료 진료하러 다녔다.

진료 틈틈이 영어로 된 책을 한글로 번역하고,

성경과 열악한 보건위생에 대한 계몽에 앞장서다가

과로에 의해 1910년 4월 13일 34세의 나이에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정동교회 부근 보구여관 유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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